서핑 11주차 - 부서지는 유리멘탈
그냥 보기엔 좋아 보이는 파도였다.
유서방도 이 정도쯤은 높은 파도가 아니라고 했으나
그 역시 아직은 파도 까막눈
동해는 모래 바다라 수시로 지형이 바뀌는데
중간쯤 낮아진 수심에 내리꽂아버리는 파도인 거다.
이날은 처음으로
맥봉이와 라인업에 나가는 날이었다.
게다가 맥봉이 적응시킨다고(라고 쓰고 맥봉이를 지키고 싶은 유서방의 작은 마음) 개인강습도 붙여준 유서방을 생각하며그 (미친) 파도를 열심히 뚫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통돌이처럼 파도에 말려본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여전히 서핑하러 파도에 들어가면 많은 긴장을 한다.
즐기라 하는데, 잘해야 즐기는 거 아닌가
라인업에 겨우 나갔지만, 테이크 오프를 하기도 전부터 파도에 몸의 긴장이 반응하는 바람에 나의 몸뚱이는 팔봉 매직도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어설프게 중간에 박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미치도록 꽂아대는 파도에 계속 말렸다. 물먹고 보드도 놓치고, 맥봉이는 어느 순간 팔봉쌤 머리 위로 올라가 있지를 않나. 여러모로 나도 맥봉이도 팔봉쌤도 험난한 시간이었다.
결국 이날은 포기했다.
파도와 싸워서 지고 말았다.
이미 파도와 싸우겠다는 마음부터가 틀려먹었다.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앉아있는데
문득 이 운동은 나와 잘 안 맞는 게 아닐까,
유서방을 위해 억지로 내가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힘들게 하려고 와있는 걸까,
별의별 생각에 괜히 우울해졌다.
그런 나를 알아챈 유서방이 나의 기분을 살피는 것도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선수를 할 것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까지 악에 받치지 않아도 됐다.
파도가 너무 높다 싶으면 다음엔 안 들어가면 된다. 나에게 맞는 적당한 수준에서 즐겁게 재미있게 타면 될 것을.
앞으로도 서핑 꿈나무의 열정이 실력에 닿지 않을 땐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수준에 맞는 파도는 언젠가 또 와줄 테니.
그러다 보면 라인업에 가기 위해
파도를 하나씩 넘어가듯이
실력도 한 단계씩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