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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24. 2020

I'm lovin' it


 난간에 걸터앉은 그는 노랗게 그러다 점점 붉어지는 저 건너편 하늘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겠지만 땅바닥 밑으로 가라앉는 해는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 항상 더 커 보인다. 이 역시 최후의 마지막 발악 같은 건가 하고 그는 생각해본다.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것처럼, 밤의 어둠과 그 속에서 달보다도 더 빛나는 도시의 광학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태양의 마지막 외마디 비명 같은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태양은 졌고 이 역시 중력의 법칙인 것인가 땅바닥 더 깊은 지하로 추락하고 결국 죽었다. 그리고 땅 아래 저 어딘가에 묻혔다.


 죽음을 맞이한 태양의 입관식이 끝났다. 청바지 옆단의 바느질처럼 촘촘하고 규칙적으로 놓인 가로등들은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길거리에 설치된 모든 전구들(얘네는 LED 전구일까 하고 그는 생각해본다)이 환한 빛을 내고 있지만 딱 하나, 바로 그가 않아 있는 옥상 난관의 건물 앞에 있는 가로등 하나만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필터 바로 앞까지 다가온 담뱃불을 열기를 느꼈다. 자칫 손을 델 뻔했다. 새빨간 불빛이 어두운 회색빛 담뱃재에 뒤덮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 아이도 담배로써의 수명은 다했다.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 그는 담배꽁초를 과감하게 하지만 신중하게 불이 나간 가로등 위로 떨어뜨렸다. 그가 않아 있는 옥상, 10층짜리 건물 옥상이니깐 11층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거기서부터 7층 정도까지는 궤도를 따라 잘 내려가고 고 있었다. 하지만 6층에서 5층 사이에서 왼쪽으로 급격히 휘어들어가더니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정류장으로 급히 들어오는 파란 버스 위로 떨어졌다. 그는 6층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사무실에서 창문을 열어놨기 때문에 대기의 흐름이 급격히 바꿔서 그런 거라고 추측했다. 한겨울 꽉 닫힌 창문 사이에 있는 얕은 틈 사이로 끼이익 하며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것처럼, 6층의 열린 창문이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그는 대기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측정하지도 못하며 과학을 모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해가 지는 동안 달궈졌던 공기가 어느덧 차갑게 식었다. 쌀쌀함을 느낀 그는 옆에 걸쳐 놓은 자켓을 다시 입었다. 짙은 파란색의 청자켓은 아직은 검다고 하기 애매한,  초저녁에서 저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시간 사이에 있는 약간은 푸르고 하지만 어두운 하늘과 적절한 조화를 이뤘다. 그래서 등판에 하얀색으로 프린트된 문구가 더욱 눈에 띄었다.


I'm lovin' it  



 솔직히 그는 이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는 왠지 이 문구가 익숙해서 이 청자켓에 더 눈이 갔다. 그의 집(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에는 TV가 없었다. TV 없이 생활한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으니 그쯤 됐을 거다. 하지만 그는 그 예전 집에 있을 때도 TV를 잘 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왜냐면 TV는 아빠의 애인들(그는 여자친구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할까 잠시 고민한다)이 늘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빠는 아침 일직 나갔다가 며칠 씩 안 들어오기도 하고, 어쩔 때는 한동안 집 밖을 안 나가기도 했다. 아니면 오후 늦으막힌 나가 한 두시간 만에 다시 집에 오기도 했다. 그의 불규칙한 생활만큼이나 그가 집으로 들이는 여자들도 매번 달랐다. 물론 문자 그대로 매일 다른 여자를 데려왔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자주 상대가 바뀌었다. 어쩔 때는 남자와 함께 오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아빠가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진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아빠는 혼자 집에 오지 못하는 거 같았다. 귀갓길이 무서워서였을까? 그래서 그는 아빠가 집에 함께 올 누군가를 만날 때까지 밖에 있는 건가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며칠을 밖에서 초조하게 아빠의 집으로 데려다 줄(심지어 그 사람들은 집이 어딘지도 모른 텐데) 사람을 찾고, 운이 좋으면 몇 시간 만에 바로 만남이 성사돼 집에 오는 건가 하는. 그렇게 집에 온 그들은 몸을 섞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아무 활동을 안하는 거 같기도 하고, 싸우는 거 같기도 하고, 서로 부둥켜 앉고 우는 거 같기도 하고,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 집에 오는 사람들만큼이나 그 모습도 다양했다. 


 아무튼 아빠가 데려온 사람들은 아빠가 집에 있건 없건 늘 거실에 놓인 TV를 끼고 있었다. 하긴 그거 말고 그 집에서 할만한 건 없었다. 컴퓨터도 없었고, 지하라고 해야 할까 반지하라고 해야 할까 암튼 그 당시 그의 집은 인터넷도 잘 안 잡혔다. 하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의 집에 드나들던 사람들은 마땅한 스마트폰도 갖고 있지 않았던 거 같다. 물론 오늘같이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스마트폰을 지녀야만 하는 시대가 아니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건 그런 걸 쓸만한 사람들이면 과연 그 집으로 왔었을까?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이 집에 왔겠지. 이제야 그는 오랜 의문을 해결한 거 같았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TV를 끼고 있었고, 아침이건 점심이건 저녁이건 새벽이건 할 것 없이 그러고 있었다. 그들의 성향은 다 달랐다. 누구는 그러는 와중에 그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기도 했고 심지어 용돈이라며 돈을 주거나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야박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는 그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양 굴었고, 누구는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으면서도 제멋대로 TV 소리를 높였다 줄이기도 하고, 또 누구는 몇 분을 참지 못하고 4개밖에 나오지 않는 채널을 끊임없이 돌려봤다. 집은 알아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아무튼 그런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는 TV를 볼 수 없었고 볼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그 집을 나온 이후에도 TV를 설치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러던 와중에 "I'm lovin' it"을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 집(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에서, 아니면 여자들과 찾았던 모텔방에서, 아니면 어느 식당에서 봤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문구는 익숙했고 그게 마음에 들어 이 청자켓을 샀다. 


 그는 다시 손 끝에 확 달궈진 열기를 느꼈다. 이번에도 담뱃불은 필터 바로 앞까지 전진해 왔다. 그리고 다시 새빨간 불똥이 검은 재로 덮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줄지어 늘어놓은 성냥개비가 통시에 불이 붙은 양 타오르는 가로등들이 여전히 새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바로 앞에는 여전히 불 꺼진 가로등 하나가 숨어있었다. 이번에도 7층까지 잘 내려가던 꽁초가 6층과 5층 사이에서 급격히 궤도를 이탈해 건물 입구 앞 정원으로 떨어졌다. 6층에서 불빛은 안 새어 나오는 게 누군가 창문을 닫는 것을 까먹은 걸까. 그는 걱정됐다.



 그는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그린 궤도에 따라 천천히 하지만 재빠르게 내려갔다. 너무도 찰나의 순간이기 때문에 그는 눈을 부릅뜨고 봐야 했다. 그렇게 9층, 8층, 7층에 다다랐고 이제 곧 6층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어야 할 창문은 없었고 빨간 벽돌들로 짜인 벽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당황한 그는 나머지 층도 무심히 살펴봤다. 5층도, 4층도, 3층도 다 빨간 벽돌벽이었다. 그렇다면 10층, 9층, 8층, 7층은 어땠지? 창문이 잇었나? 거기도 벽돌벽이었나? 다시 확인해봐야 하는데 그는 이미 전구 나간 가로등 위로 지는 태양마냥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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