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주는게 두려워져서.

마음을 표현하는게 진짜로 어려워서.

by 명천궐

사람에게 정을 잘 안 준다. 나는 뭐 여자 친구 없어도 되고 친구 없어도 되니까. 사실 거짓말이다. 합리화다. 정을 주는 게 두렵다. 내가 준 만큼 못 받을까 봐 그렇다. 못 받으면 허무함과 상실감에 괴롭기 때문이다. 만약 정을 준 만큼 못 받을 각오를 한다 해도 정을 주지 못할 것이다. 정을 준만큼 못 받은 사건들이 이때까지 여럿 있어왔기에 정을 주지 않도록 습관이 생겨졌기 때문이다. 래서 나는 정을 주는 게 미숙하다. 사실 애초에 정을 준 만큼 받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를 두는 것도 문제였던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정작 내게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지만 내가 스스로 상처를 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이 낮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자존이 높지만 여전히 정에 관한 상처를 만드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만약 내가 실제로 현재 자존이 낮은데, 높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는 거라면? 그러면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자존이 낮다고 생각해야 하나? 그러면 그 환상이 깨질 때의 괴로움도 느끼고, 정에 관한 상처도 여전히 계속 만들 거 같은데. 그러면 상황이 오히려 악화되는 것 아닌가? 자존이 낮은데 높다고 세뇌하는 게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이게 고쳐야만 하는 건가? 나는 과거에 자존이 실제로 낮을 때 그걸 직시했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데? 내가 자존이 낮은데 높다고 세뇌시키고 있으며,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하다고 세뇌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지금 여기 바로 현재 지닌 감정은 거짓인가? 자존이 낮았다가 높아져본 경험이 있는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줘본다면 어떨까? 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자존이 높은 게 맞으니까. 근데 자존이 높다면 애초에 이런 생각도 안 했지 않았을까?


나는 계획을 자주 하는 성향이다. 미래를 계획하는 습관이 왜 생겼는가 하면, 결국 자존이 낮아서 미래가 잘 되리라는 기대보다는 부정적일 것이라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계획을 잘하는 것이 장점이라지만, 사실은 낮은 자존으로 얻게 된 능력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나는 지금을 과도기적 상태로 정의하려 한다. 자존이 낮았었는데, 성찰 1~2년 한다고 갑자기 확 높아지는 것도 이상하다. 나는 나의 단점을 타인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결핍과 열등함에 대해 인정을 하기에 자존이 높다고 생각했다. 근데 단점을 말했을 때, 마음이 찝찝하다. 그래도 예전엔 숨었었으니, 나아진 건 맞다고 생각한다. 자존이 극도로 낮은 시절의 습관이 잘 변하지 않는 것에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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