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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un 27. 2020

<DA 5 블러드>

혈통과 정체성에 대한 신념

1863년 1월 1일 링컨 대통령은 흑인 노예 해방 선언을 한다. 그로부터 2년 후 1865년 6월 19일 마지막으로 텍사스 주에서 노예 해방령이 선포된다. 공식적으로 이 날 이후로 흑인들은 백인의 소유가 아니었지만, 뿌리 깊은 갈등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다 뽑히지 않았다.


흑인들의 인권을 살리기 위한 운동은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로사 파크스, 마틴 루터 킹, 말콤 X. 그 외 이름 모를 영웅들. 몰라도 영원히 기억될 이름들. 수십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형제' 들의 권리와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워왔다.



영화계에도 형제애를 강력히 설파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스파이크 리 감독이다. 그의 출세작인 1989년작 <똑바로 살아라>부터 최근작 <블랙 클랜스 맨>에 이르기까지 몇몇 작품을 제외하곤 줄곧 흑인의, 흑인에 의한, 흑인을 위한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그의 최신작 <DA 5 블러드>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떠들썩한 요즘, 참으로 묘한 시점에 공개가 되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5명의 흑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DA 5 블러드>. 그들의 현재와 과거를 함께 보여주는 전개는 흑인을 주인공으로 한 단순한 전쟁영화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겉보기와는 다르다. 전쟁을 소재로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줄곧 그랬던 것처럼.


1. 찾으려 한건 금이 아닌 목소리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베트남전 당시 묻어두었던 금을 찾기 위해 베테랑 참전용사들이 다시 뭉친다. 금과 함께 전쟁 당시 전사한 전우의 유해를 찾기 위한 일도 함께 진행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금을 찾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여러 방해공작과 배신, 싸움과 전투. 노익장의 참전용사들은 목숨을 걸었고, 결국 금과 전우의 유해를 찾고 지키는데에 성공한다.


이들이 금을 찾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지난 수백 년간의 인권운동과 투쟁의 역사와 오버랩된다. 비록 영화에서는 눈에 보이는 '금'이라는 물질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들이 찾고자 하는 건 그들의 권리와 차별이 아닌 평등이다. 금을 발견한 순간 '진격의 노먼' (채드윅 보스만) 은 얘기한다. "이 금을 우리를 위한 보상으로 생각하자고, 그리고 형제들을 위해 사용하자고"


미국이 참여한 수많은 전쟁에 있어 항상 최전선에서 목숨을 바친 그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뿌리 깊은 차별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를 영화 속에서는 노먼이라는 인물을 화자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다큐멘터리 필름과 사진들을 교차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를 더한다. 스파이크 리 감독은 <DA 5 블러드>에서 흑인들의 '영혼'과 '정체성'에 대해 아주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금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긴 했지만 표현방식은 돌직구에 가깝다. 원래부터 쌈닭의 기질이 있는 연출자가 그의 작품을 통해 형제들의 혈통과 정체성에 대해 과감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2.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

베트남에서 다시 뭉친 이들은 여전히 미국에 사는 흑인이다. 차별과 갈등이 아직 존재하는 곳에서 그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방문한 베트남.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이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현지 사정에 능통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베트남인, 프랑스인 등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그들의 작전에 끼어들게 된다.


블러드 멤버 중 한 명인 폴 (델로이 린도) 은 이런 끼어듦이 영 못마땅하다. 그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정신병까지 얻으며, 비 미국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수십 년을 지냈다. 다른 멤버들이 다른 인종 사람들에 대해 관용으로 대하지만, 폴은 여전히 그들을 불신한다. 불신은 폴을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게 한다.


하지만 폴도 폴의 형제들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을 당하지 않았던가. <DA 5 블러드>에서 폴이란 인물이 보여주는 행동은 의미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차별당한 그가 똑같이 차별을 하고 (베트남인을 옐로 몽키라고 부르는 등) 폭력을 자행하는 모습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아마도 스파이크 리 감독은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게 또 다른 차별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폴이란 인물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결국 흑인, 베트남인, 프랑스인이 힘을 모아 목적을 달성하는 훈훈한 결말을 맞이한다. 이런 영화의 결말이 지금 시대에 흑인을 비롯한 우리가 지향해야 될 모습이 아닐까.



'Black Lives Matter'가 나아가 'All Lives Matter'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이 표현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럽다. 나는 단지 모든 인종이 평화롭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 사는 흑인이 아닌 이상 쉽게 얘기할 수 없는 일이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지지하지만, 그들의 목숨 값에는 한 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워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ps: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마빈 게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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