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검은색이 낮겠다. 카키색 블라우스에 팔 하나를 넣었다가 벗어던지고 검은색 재킷과 어울릴 만한 바지를 다시 찾는다. 그래도 면접인데 좀 격식 있어 보이는 게 낫지.
굽실거리는 머리도 좀 펴고,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거무스레 그늘진 얼굴 기미에도 정성을 다해 겹겹이 컨실러를 펴 바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근 들어 이렇게 공 들인 적이 있었겠나 싶게 정리하고 이만하면 됐겠거니
전신 거울 앞에 딱 서 보는데,.
‘음,.. 아니야. 아무리 봐도 그냥 펑퍼짐한 아줌마야. 인정해. 니 나이가 오십이다. 쯧쯧..’
사십 중반을 넘기고 오십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확인하고 학습한 결과.
그런데도 아직까지 질척 질척 한탄스러워한다면 그건 명백한 감정 낭비.
세월이 흘러 겉모습이 달라지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이치라니 받아는 들이겠는데, 깊은 뱃속 저 어디서부터 꿈틀꿈틀! 마지막 자존심인지, 자존감인지 용트림을 해 댄다.
‘그래서 뭐? 요즘 세상에 얼굴 보고, 나이보고 뽑는 데가 어딨냐? 까짓 어차피 이미지야! 진짜 면접으로 승부를 봐야지!’
과하게 자기 최면을 해대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감도 예전 같지 않은 게 분명하다.
‘음,. 이것도 거스를 수 없는 이치였던가?..’ 아무리 대범한 척, 별 거 아니란 척해도 공식적인 면접을 보는 게
거의 십오 년, 손에서 일을 완전히 놓은 지 4년이 지났다.
인간만큼 간사한 동물이 없다고?!
동감이다.
특히 나의 행보는 여기에 딱 맞아떨어진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발령으로 하던 일과 다니던 대학원을 그만두던 당시, 이번이 아니면 절대 일을 그만두지 못할 거다.
이건 하늘의 선물이자 신의 계시다!
그래서 단칼에 모든 주변을 미련 없이 정리했다. 그리고 아침이면 어디든 내 맘대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도 비슷할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한 일상을 마음껏 즐겼다.
그런데 역시 거스를 수 없는 이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4년 뒤가 냉큼 다가왔고, 나는 이제 덩그마니, 혼자, 집에 남았다. 간사하게도
이젠 아침이면 어디라도 나갈 수 있는 남편이 무지하게 부러웠고, 어느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내 신세가
한심했다.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그 순간이 온 거다.
그래서 고민해 뒤지고 찾아 결정한 일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미국에서 잠깐 language exchange로 서로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웠던 경험이 매우 흥미로웠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더라도 큰 부담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약속된 휴식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다가올 4년 뒤를 본능적으로 준비해야만 했었던 거겠지. 어느 정도 쉬고 나선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육신이 건강하고 멀쩡한데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건 일종의 낭비요, 방만이며 책임회피라는 사고방식. 더욱 솔직하겐 내 밥은 내가 벌어먹겠다는 나의 삶에 대한 약속. 그런 거였다. 그래서 생각 끝에 쉬는 기간이 있었으니 처음엔 서서히, 적응의 의미로
일하는 시간이 좀 작은 초등학교 방과 후 선생님 자리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침 집 근처 초등학교에 한글을 가르칠 선생님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바로 그날, 역시 수 십 년 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냈다. 일주일에 40분씩 두 번, 그렇게 한 분기, 약 3개월간 강의를 계약하는 일자리였다. 대상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한글을 깨치지 못해 힘든 학생들. 돈으로 따지자면 한 달에 20만 원 좀 넘는 정도를 벌 수 있는 자리.
이런 자리에 젊은 사람들이 지원할 리는 없을 것 같고, 나 같은 경력단절 아줌마들이 지원하면 맞춤 한 일자리로 느껴졌다.
이력서를 내고 나면 그렇다. 벌 수 있는 돈의 많고 적음과 별도로,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상관없이 결과, 그러니까 내가 그 심사에 붙었냐, 떨어졌냐. 통과했냐, 못했냐. 오직 이것만 중요해진다.
특히 오십 먹은 중년 아줌마의 재 취업 도전 상황에선 더욱더.
역시 실로 오랜만에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오매불망하고 있자니 다행히 면접을 보러 오란다.
‘그래! 나이 오십이라고 안 되는 게 어딨어. 역시 찾기 나름이고 도전하기 나름이지.’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는데, 얼굴이라도 보자는 게 어딘가 싶고, 아직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건가 싶어 지며 과하게 감사했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쉰 모양이다.
가능하면 집 안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쥐도 새도 모르게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볼 심산이었다.
되면 다행이고 안되면 훌훌 털어버려야지 싶어서. 그런데 하필, 면접 보는 날이 남편의 귀하디 귀한 휴가와 딱 겹쳐졌고, 결혼하고 20년이 넘도록 어쩜 저렇게 눈치 없이 잘도 살까 했던 사람이 마누라 면접은 기막히게 눈치채곤 동행을 감행했다. 어차피 알게 된 거 감춰야 뭐할까 싶어 같이 가보자꾸나 나서는데 이런! 마땅한 구두가 없다. 버리자니 아깝고, 신자니 이젠 굽이 너무 높은 구두만 서너 켤레. 정리도 못하고 신지도 못하는 애매하기만 한 저 놈의 구두들. 까짓 요즘 젊은 친구들은 예사로 정장에 운동화도 맞춰 신더만 나라고 못할쏘냐. 어디 한번 나도! 하며 운동화를 신고 나서는데 우리 집 아저씨 질색 팔색. 그래도 면접 가는 사람이 갖춰 입고 신어야지, 운동화는 진짜 아니라며 낮은 부츠라도 신어 주란다. 내키진 않지만 남편 말대로 그래도 면접 아닌가. 덕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용모단정, 하지만 어딘가 많이 어색한 아줌마 등장!
남편은 멀지도 않은 이웃 초등학교까지 굳이 차를 가져가겠다며 운전대를 잡곤 너보다 훨씬 경력이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으면 어떡하냐, 면접을 온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를 아줌마를 가리키며 저기 앞에 도착한 아줌마 보이냐, 딱 봐도 말 잘할 것 같지 않냐, 네가 모르는 질문을 하면 어떡하냐.. 쉬지 않고 종종 댄다.
대체 누가 면접을 보러 가는 건지 나보다 더 긴장한 게 분명해 보인다. 슬쩍슬쩍 웃는 눈매에 빨라지는
말투까지. 굳이 알아차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난 그냥 알아 버려졌다.
남편은 긴장을 넘어 신나 하고 있는 거다.
결혼부터 지금까지 일하는 부인을 자랑스러워했고 무엇보다 든든해했다. 웃을락 말락 가늘어지는
저 눈매가 말하고 있는 건
‘난 네가 잘하고 올 거라는 걸 알아. 그렇지! 내 마누라는 뭐라도 할 여자야!’ 이거다.
아무래도 너무 오래, 같이 살만큼 산 모양이다.
면접을 기다리며 교무실 분위기를 살피고 있자니 나보다 예닐곱 살은 더 어려 보이는 한 명이 더 들어온다.
어라. 그런데 복장이 매우 자유롭다. 청바지에 셔츠차림. 거기에 운동화로 마무리. 그래, 편하게 오면 될 것을
미쳤다고 부츠에 재킷까지. 따지자면 그래도 공식적인 면접이니 운동화보단 부츠를 신은 내가 더 당당해야
할 텐데, 어째 내 속은 맞춰 보겠다고 부츠까지 신은 내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살짝 위축이 되려는
찰나, 편한 차림이 묻는다.
“초등학교에서 일해 보셨어요?”
“아니요. 전 처음이에요. 일해 보셨어요?’’
“아니요. 저도 처음이에요.”
하필 이럴 때 비집고 들어오는 쓸데없는 유머 근성.
“아, 그러세요. 그럼 중학교에선 일해 보셨나 봐요?”
“아. 저는 대학교 어학당에서만 강의를 해봤어요.”
헉! 뭐라냐!! 초등학생 한글 가르치는 일자리에 대학교 어학당 출신 강사가 지원을 하다니!
이것은 곧 동네 빵집 옆에 대 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요, 간당간당한 골목 중국집 옆에 호텔 출신 셰프가 삐까번쩍 중국식 레스토랑을 차린 것에 비유해야 마땅할 바다! 과해도 너무 과한 거지!!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면 교원 자격증은 당연히 가지고 있을 거고, 석사 이상일 테고,. 갑자기 자기소개란에 한 달 뒤면 교원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과정이 끝난다고 자랑스럽게 써놓은 내 손이 원망스러워졌다.
내가 이쪽 세상을 너무 몰랐던 걸까?
아니면 초등 애들 가르치겠다는 저 양반이 너무 내려놓은 걸까?
어찌 됐든 면접 시작도 전에 복잡 다단 산란해진 머릿속.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깔끔하게 답한 것 같지는 않고, 분위기만 즐겁게 면접을 마치고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돌아왔다.
전공이 면접이라고 큰소리치고 들어갔던 부인이 ‘운동화’ 경쟁자에게 잔뜩 쫄아 ‘이럴 줄 몰랐네, 정말 한국에서 먹고살기 힘드네, 저런 사람들 부를 거면 왜 나를 불렀네, 역시 오십 먹은 아줌마는
불러 줄 곳이 없을 것 같네..’ 징징대자, 예상 못한 전개에 황급해하며 달래기 시작한다.
‘너는 아직 자격증이 나온 것도 아니쟎냐? 자격증 나오면 다 나아질 거야. 밥이나 먹자!’ 하지만 이미 난 밥
먹고 기운이 펄펄 나도, 펄펄 나는 기운으로도 일할 곳은 찾지 못할 거라는 불안에 듬뿍 휩싸여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오늘 겪은 자초지종을 대학원에 다니는 동생에게 문자로 알리자 간단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마음 접고 다른 곳 알아봐라!’
그리고 밥을 다 먹고 나올 즈음 확실히 마음을 접게 해 줄 전화를 학교로부터 받았는데 역시 그 운동화 강사가 강의를 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시간을 내주셨는데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고, 어쩌고. 그렇게 미안할 거면 뽑아주고 미안해할 일을 안 만들면 되지.
“뭐래. 떨어졌데?”
“그래. 떨어졌다!”
“……… 야! 괜찮아, 괜찮아! 어디 거기뿐이냐?”
“……….”
“누가 됐데? 어학당?”
“어.”
“오래 못 견뎌. 대학생들 가르치던 사람이 어떻게 초등을 가르치냐?”
“…………..”
“아.. 어.. 그런데 너 괜찮냐?”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괜찮아야지 뭐. 에이!! 괜히 부츠는 신으라 그래서! 그 사람은 운동화 신고
왔더구먼!!”
“부츠 때문에 떨어졌다는 거냐?”
“부츠 신고도 떨어졌다는 거다! 됐냐!”
그렇게 4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본 첫 번 째 면접은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그리고 십 수년 전엔 듣도 보도 못했던 제출서류 반환 동의서 덕에 낙방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붙어 있는 내 이력서와 졸업 증명서 등등을 돌려받아야 했다. 담당 선생님께 우편으로 돌려주십사 요청했지만 학교와 가깝다며 굳이 인편으로 직접 돌려주겠다 했고, 나는 예전 같았으면 그냥 파쇄시키거나 역시 가까우니 내가 찾아가 돌려받겠다 하고도 남았을 것을 그럼 누구라도 집 근처로 가지고 오시라 주문했다.
이력서와 서류를 돌려받던 날, 나는 담당 선생님에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떨어졌는데 다시 가서 돌려받고 싶지 않았어요!!”
굳이 부츠까지 꺼내 신고도 떨어진 소심한 분풀이.
그 후로 며칠간 투덜거릴 일만 생기면 나는 입버릇처럼 소리 내 읊었다.
“에이! 면접도 떨어지고!”
이 말이 나오면 남편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더 살폈고, 나는 아무래도 ‘부츠’ 말고 ‘운동화’로도 통할 다른 전략이 있어야겠다 생각했다.
무딘 ‘칼’이지만 갈아야 뭐라도 썰어볼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