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ntie J Jul 30. 2019

배부른 아줌마의  구직에 대한 입장 정리

 

이건 본능적인 위기감이다. (달력을 볼 때만 겨우 느끼는 건 아니길)

칼을 가는 건지 마는 건지 이러다 흐지부지 막을 내리게 되면 아마 두고두고 자존감 하락의 원인이 될 거다.

뭐든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관심을 두고 부지런을 떨어도 될까 말까 일 텐데 구인 정보 업그레이드 조차 일주일에 한 번이 고작이다.

… 내가 부지런하지 못해선 아니다.

매일 들여다봐도 한국어 선생님을 찾는 일자리가 나질 않는다.

결국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삼일로 넘어가더니 일주일에 한 번 일자리 검색을 하고 앉았다. 이러다가 반년 지나가고 후딱 일 년 닥치고, 결국 아무런 경력도 쌓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가겠구나.. 싶어 진다. 갑자기 청년 취준생들의 초조함이 어떨지 느껴지니 심히 안쓰럽다.

 

그래서 결론.

한 가지 일자리만 찾아선 죽도 밥도 안될 듯.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우선 고용노동부 시스템, 워크 넷을 뒤지고 혹시나 싶어 사설 구인 사이트(사람*, 인터*등등)까지 싹 다 뒤진다. 뻐근해진 목을 좌우로 돌리고, 어깨를 풀려고 날갯죽지까지 한 번 퍼덕일 즈음, 나는 정확히 현실을 파악한다. 일자리가 없다고?..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사람 구하는 광고는 넘치는구만. 그럼 대체 왜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 걸까? 노동대비 결과, 즉, 월급 많이 주고, 잘릴 위험이 없으며, 4대 보험 보장돼야 하고 보너스마저 빵빵한.

여기에 직업란에 적어도 꿀리지 않을 자리.. 그런 게 흔하지 않다면 뭐 할 말은 없다(혹은 소비자 물가 대비 급여 수준까지 따져 한창 크는 애들이 있는 집안의 가장 월급으론 택도 없다 라는 주장도 받아들임). 하지만 나처럼 겸허하게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일만 하게 해 주신다면, 혹은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쓰임이 될 일자리 어디

없을까요? 한다면, 정말 일자리는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나는, 왜, 선뜻 일하러 나가지 못하고 오늘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컴퓨터만 째려보고 있는 걸까?


① 내가 원하는 직종이 없다.

구인 사이트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첫 번째 과정은 직종을 선택하는 거다.

직업으로 원하는 직종, 예를 들어 건설/채굴, 경영/사무/금융/보험, 교육/법률/사회복지/경찰, 소방 및 군인, 연구 및 공학기술 등등 대 분류되어 있는 직종에서 한 분야를 선택한다. 그리고 다시 중분류로 더 세심하게 직업 군을 나눈다. 직종에 따라 소분류까지 선택하다 보면 웬만한 직업 이름은 다 등장하기 마련. 위치, 월급, 풀/파트타임 등등 내가 원하는 근로 조건을 입력하고 현재 구인 중인 업체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비교, 확인한 뒤 구직 작업에 나서면 끝!이라 하겠다. 그런데, 새로운 당황스러움 등장.

클릭에 클릭을 거듭해도 내가 원하는 일자리의 제목! 이 보이질 않는다. 기술이 필요한 직종은 갈고닦은 기술이 없으니 애당초 지원이 불가능하고, 그나마 교육분야, 혹은 글을 쓰거나 말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겠는데, 교원자격증이 없으니 기간제 교사 같은 자리는 지원 불가. 그럼 학원 강사 자리를 보자 싶어 둘러봐도 나이에 비해 경력이 없으니 힘들겠다. 글을 쓰는 일은 일자리 자체가 희귀하기도 하지만 일 자체가 알음알음 주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온라인에서 찾기는 힘들 듯하고(그렇다고 오프라인에서 찾을 재주가 있냐 하면 절대 아니니 또 좌절). 이 즈음되니 옛다!! 이래도 일 자리가 없더냐!! 어디 한번 마음껏 골라봐라!! 싶게 줄줄줄 이어지는 구인정보들이 ‘오직 나’ 에게만 먹지도 못할 남의 집 줄줄이 비엔나였구나 싶어 진다.

직종별, 지역별, 테마별 각종 조건으로 아무리 찾아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


②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일 하지 않을 핑계를 찾고 있는 거겠지.

대놓고 중년 주부들을 찾는 일자리는 드물다. 있어도 대부분 판매직인데 내 성격에 물건을 팔아야 한다면 결국엔 내가 사서 내 집에 쌓아둘 텐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러니 패스.

한도 끝도 없이 지원 제한이 없는 업체를 뒤지고 또 뒤져 입사 기준을 살피는데, 보아하니 쉴 새 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해야 할 것 같아서, 집에서 너무 멀어서, 몸으로 일하면 힘들 것 같아서, 지원해봐야 어차피 떨어질 게 뻔해서… 등등. 지원서를 내지 않을 이유가 백 가지도 넘어갈 판이다.

예전 같았으면 ‘배우면서 일하겠습니다’, ‘ 지금부터라도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어떤 공부라도 해보겠습니다’..

큰 소리 빵빵 치면서 ‘일만 시켜주신다면!’ 했을 텐데 지금 ‘나’는 뽑는 사람 입장은 들어볼 생각도 안 하고(생각 자체가 없는 거라 본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쏙쏙 골라 택도 없이 견줘 보고 있다.

 

③ ‘배부른 아줌마’의 그저 그런 노력이 들통나기 전에 입장 정리해라!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때의 느낌과 너무 다르다. 그 비싼 학비를 내고 대학까지 나와서 아침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을 정도로 난 뻔뻔하지 못했다. 뭐라도 해서 용돈도 드리고 싶었고, 내 밥 값은 내가 해내야 떳떳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난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살 수 있고, 남만큼은 고생해서 벌어 놓은 돈도 있다. 즉,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고, 일상이 마비될 정도의 사정은 아니라는 거다.

이거다. 쓸데없는 여유와 이유 같지 않은 온갖 이유가 늘어선 원인.

‘생존’을 위한 노동에 지친 어느 누구에게라도 들킬까 죄스러운 걸 보니 아직 ‘노동의 신성함’은 알고 있는 것 같군..


글은 쓰고 싶지만 평생 배고플 것 같아 이직을 하고도 글쓰기에 미련이 남아 곧 다시 쓰겠노라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안 쓴 건지, 못 쓴 건지 주야장천 도돌이표만 돌리고 있을 때 우리 아버지 왈, ‘네가 배가 고파야 글을 쓸 거다!’ 악담 같은 예언을 하셨다. 배고프기 싫어 그만뒀지만 배부르니 다시 하고 싶고, 하지만 다시 쓰려면 배고파야 할 수 있을 거란 묘한 아이러니.


먹고살만하고 싶어서 지긋지긋하게 일하다 이제 먹고사는 건 둘째로 놓고 ‘적성’도 좀 찾고, ‘몸’도 좀 살피면서 ‘일’좀 해보자 했더니.. 막상 그게 잘 안 보인다.


나는 아무래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돈도 잘 버는 그런 팔자는 아닌가 보다.



이전 01화 나는 이제부터 중년 구직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