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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Sep 25. 2019

내가 아는 그녀 3:   놀면 뭐하냐. 돈이나 벌지!

저녁은 굳이 본인이 낼 터이니 잠자코 나오란다.

대접받을 일을 한 기억이 당최 없는데 이 무슨 부담스러운 이벤트냐 되물으니 나오면 알 것이란다.

그래서 나갔다.

내 돈 주고는 절대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강남 한복판,

목을 뒤로 젖혀야 끝이 보일 동 말 동 무지하게 높은 빌딩의 뷔페.


“이것이 뭔 일이냐?”


“축하할 일이 있어서!”


“로또냐?”


“그게 낫긴 하네. 그건 다음에 한 번 해보고!! 드디어 대출이 1억대로 떨어졌다!!”


“아이고!! 고생했네! ….. 그런데 여긴 왜 와?”


“축하 파티! 애 아빠랑 딱 돈 100 만원씩, 각자 쓰고 싶은데 써보기로 했다!”


음식은 고급스럽게 맛있었다. 평일이라 사람도 적어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았다.


“내가 이렇게라도 돈을 써야지, 안 그러면 답답해 죽을 것 같아서.”


“일이 많아서 그래. 돈 쓸 시간이 있어야 돈을 쓰지.”


친구는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동네 아이들을 알음알음 모아 과외를 한 지 9년째 된 과외 선생님이다.

친구는 성격 상, 학부모 비위를 맞추거나 아닌데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오히려 아이를 맡기려면 맡기고 말려면 말라는 식의 선생이다. 그런데 이런 성격이 오히려 도움이 된 건지 학생들이 줄을 섰고, 학부모들은 친구에게 자식들을 맡기려 발을 동동 구른다고 했다.

그러나 집에서 일을 해야 하니 번거로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란다.

우선, 아이들이 하교하는 2시부터 과외 수업을 마치는 저녁 9시까지 우리 집이 남의 애들 집이 된단다.

주말엔 오전부터 보강에, 시험기간이면 특강에 한참을 복작대야 하고.

친구의 아들, 딸이 본인이 가르치는 학생들 또래임에도 자식들 숙제를 봐준다거나 아이들과 함께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고, 식사마저 어릴 때부터 아이들 스스로, 숙제며 학교 준비물도 알아서 챙겨야 했단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2500만 원 반 지하에서 시작한 친구는 전세지만 왠 만한 곳에선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비싼 동네의 아파트에, 대출이 있긴 하지만 상가도 두어 채 구입해 월세를 받을 정도까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자리 잡은 만큼 마음도 잡혔으면 좋으련만 친구는 시간이 갈수록 지쳐했고 주변에선 너나없이 일을 좀 줄일 것을 권했다.


“이젠 건강도 생각해야지. 너무 돈에만 집중하지 말고..”


“안 그래도 내가 두 팀 정도 빼고 운동도 하고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이게 막상 줄이려니…

줄이면 뭐하나 싶은 거라.”


“뭐하긴. 말대로 운동도 좀 하고, 쉬어야지. ”


“아니.. 요즘 보니 다 내 나이면 회사를 나오든가, 무슨 일을 해도 다 지긋지긋하다, 그만두고 싶다. …

다 나더러 부럽데! 집에서 조 말 조 말 벌만큼 벌고, 잘릴 걱정 안 하고.”


“그래서. 갑자기 행복해지셨어요?”


“아니… 행복해진 건 아닌데, … 주변을 봐라. 돈으로 해결 안 되는 게 있나. 다 돈이야. 돈! 내가 놀아봐라. 그만큼 못 벌 거고, 딱히 일을 안 해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놀면 뭐하나,. 그냥 돈이라도 벌지.. 싶어 져.”


한창 크는 애 가 둘, 벌기는 하지만 친구만큼도 아닌 데다, 55세면 칼 같이 은퇴하고 여생을 즐기시겠다는 남편에, 퇴직금도 없어 보너스도 없어 오직 자기가 시간을 쏟은 만큼 벌 수밖에 없는 친구.

그런 친구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불안한 미래를 돈으로 안심시킬 수 있는 것만은 또 아니기에 뭐라 덧붙여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지금처럼, 절인 배추처럼 푹 늘어져서, 일 년 365일 일만 하시겠다고?”


“나도 모르겠다고. 이게 아닌 건 확실한데 이렇게 안 살면 불안해질 것 같아서.”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불안하구먼..”


“어. 덜컥 애 아빠가 일을 못하게 되고, 애는 대학 가고, 공부라도 더 하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싶고..”


“애들 가르치는 건 재밌냐?”


“재미보다 뭘 해도 이것보단 힘들겠다 싶고. 아르바이트로 하던 걸 업으로 삼아 진작부터 할 걸 왜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나.. 싶기도 하고.”(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던 친구는 학생들 가르치는 걸 싫어라 했고

친구 말대로 전혀 돈 버는 것과 상관없는 허세 가득한 전공으로 석사까지 마쳤으나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졸업하고도 6년을 고생했다고 했다. 그러니 결국 전공과 상관없는 과외로 돈을 벌고 있는 지금이 아니러니 할 뿐이라고..)


결국 돈이 있어야 든든한 사람이 되는 게 진짜 매력이 없는 건데, 혹시라도 그렇게 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신이 없어진다는 씁쓸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늙음을 탓하는 건지, 돈을 탓하는 건지,

그러다가 돈을 벌어도 미래가 불안한 건 성격 탓인지, 세상 탓인지, 주저리주저리..

이 나이면 뭐든 선택하는 게 수월할 줄 알았고 사소한 욕심쯤은 이미 떨쳐 버렸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만도 않다며 역시 불안하고 불투명한 게 인생이라며 투덜투덜,..

그러다 결론은, 결국 이러다 죽을 것 같다 에 동의하냐 아니냐 실없이 툴툴거리다 우린 헤어졌다.


아마.. 사람들 대부분 다 그럴 거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그건 축복이고.

좋아하는 것 까진 아니어도 내 노동으로 내 식구들을 먹이고 챙기고. 넌 그러고 있잖니.

그것만으로도 참 잘 살고 있는 거란다.

그러니.. 조금만 숨 돌리면서 가라.

그래야 끝까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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