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난 연애하기 바빴지
밀리의 서재를 보다가 엄청난 신간을 발견했습니다. '40일간의 산업일주'라는 책인데요, 처음에는 다소 투박한 제목을 보고,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책 많이 있죠. 경제신문사 같은 곳에서 가끔씩 발행하는 이런저런 얕은 깊이의 글들을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내놓은 책, 그래서 예산 좀 있는 기관이나 기업체, 학교에 B2B로 적당히 파는 책, 그런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 책은 저자가 보통 여러 명이거나 신문사명으로 적혀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1명이어서 잠시 주춤하긴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40일간의 산업일주라니, 적당히 좀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저처럼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아주 재밌게 읽은 비슷한 또래인가 보다 했습니다.
일단은 책의 '간'을 보아야 하므로, 제가 잘 아는 산업을 어떻게 적어놨는지 쓱 봤습니다. 보고 나서, 어? 했습니다. 그냥 인터넷만 뒤적여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산업 내부자 정도만 알 만한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앞서 말한 겉핥기 책에서 이 정도의 내용은 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목차를 살펴보니, 범위가 상당합니다. 웬만한 산업군은 다 다루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깊이로 말이죠. 저자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경력을 가진 사람이 이런 넓고 깊은 책을 쓸 수 있을까. 그런데 저자가 현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부생이랍니다. 저도 학부생이란 걸 해봤는데 말이죠. 물론 제 수준과 기준에서 하는 말이지만, 학부생이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습니다. 학부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제가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그렇습니다. 저자는 10대 때부터 재무제표를 분석하고, 기업의 IR팀을 찾아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답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이 책은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사막의 샘물 같은 책입니다. 다른 팀원들에겐 알려주고 싶지 않은, 저만 몰래 보고 싶은 책입니다. 그런데 브런치에 굳이 이 책 소개를 하는 이유는, 이 브런치를 보는 사람들이 극소수이기 때문이죠. (저만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일기 같은 브런치이기도 합니다.) 대중서적처럼 쉽고 잘 쓰인 이 책은 잘 모르는 산업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좋은 책입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보긴 했지만, 하드카피로 구매해서 곁에 두고 싶은 책입니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