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가볍고 흥미롭습니다. 책은 총 20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초반 5장까지는 책의 홍보문구에 많이 나온 이야기들이 재밌게 설명됩니다. 세금이 왜 탄생했는지(세금의 시작은 십일조였고, 문명이 생겨나자마자, 그러니까 1만 년 전부터 십일조의 형태로 세금은 존재했습니다), 종교와 세금은 어떤 관계이며(종교는 십일조를 통해 유지되었고, 그 십일조는 전쟁 자금이 되기도 했으므로 종교와 세금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종교는 어떤 의미에서 최초의 구독경제모델(매주 사람을 불러 모아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회비를 걷는다는 의미에서)이라고 할 수 있는지, 홍콩의 성장 비결은 무엇이었는지(세금이 적고 체계가 단순해서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저자는 5장까지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관심을 끌어모은 뒤, 재미없고 지루한 서구 세금 역사를 무려 7장, 약 120페이지에 걸쳐 설명합니다. 영국 사람이나 서구 문화권 사람들이 이 내용을 읽으면 재밌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주 지루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책을 그만 읽을까 싶은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일단 책은 끝까지는 한번 가보자는 평소의 생각(억지로 참고 읽어서 끝까지 가자는 건 아니고, 대충 훑어보고 넘기면서 혹시 볼만한 내용이 있나 하면서 끝까지 봅니다)대로 책장을 후루룩 넘기다 보니, 디지털 어쩌고, 비트코인이 어떻고, 이런 요즘 친숙한 이야기들이 좀 나와서 다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저자가 책을 쓰면서 심각해진 부분이고,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 중간의 지루한 역사 이야기는 사실 다 기억은 안 나는데요, 성의 없게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부와 국민이 세금을 두고 싸우는 그런 흔한 내용입니다. 유럽 이야기지만, 한국도 과거에 겪었던, 여러분이 충분히 알고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러 후기에서 책의 후반부와 결론을 두고 '잉?' 하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거든요. 다소 갑자기 저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조세제도와 이상향 같은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저자를 위한 변을 제 나름대로 하자면, 저자는 처음부터 이 결론을 염두에 두고 책을 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자의 후기를 보면, 책을 쓰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는데요, 책의 시작은 '세금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Let's talk about tax)라고 하는 코미디쇼 였답니다.(저자의 본업 중에 하나는 코미디언입니다.) 3년 간의 저자의 사고 과정을 제 맘대로 추측해보면, 지금의 세금 체계는 뭔가 문제가 있다 -> 도대체 어쩌다 이런 복잡하고 불평등한 세금 체계가 생겨났지 -> 세금의 역사를 좀 살펴보고, 다른 나라의 사례도 좀 보자 -> 역시 이대로는 안 되겠어, 화가 난다 -> 내가 꿈꾸는 세상은 이런 조세제도가 있는 세상이다 -> 그러려면 세금 개혁이 필요하다 -> 개혁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혁명이 필요한데, 이 책이 그 혁명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해석은 자유니까, 책을 다 읽은 독자로서 이 정도의 추측은 괜찮겠죠. 제가 생각한 이 책을 효율적으로 읽는 방법은, 5장까지 재밌게 보고, 6장에서 12장까지(또는 경우에 따라서 14장까지) 대충 20분 만에 다 보고, 그 뒤부터 진지하게 읽어보는 것입니다. 읽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안 읽으면 되고요. (저는 안 읽히는 책의 85%는 저자 책임, 10%는 번역자의 책임, 남은 5%는 독자의 관심사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참, 책의 원제는 '햇빛 도둑(Daylight Robbery)'입니다. 16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돈이 필요하자, 궁리 끝에 나온 세금이 '창문세'인데요, 바로 창문에 세금을 부과하는 겁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창문을 없애기 시작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햇빛을 볼 자유마저 빼앗겨버린 원인이 된 이 창문세를 '햇빛 도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위의 방법대로 잠시 시간 내어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