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MD Jul 08. 2020

[월간책방] 메이드 인 공장

책 윗부분에 찍힌 도장을 보니, 한 6년 전쯤 구매한 책이더군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하릴없이 서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눈에 띄어서 구매했던 책입니다. 두께도 적당히 얇고, 소재도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제가 그래도 크게 보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고, 봉제공장도 몇 번 가봤고, 또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들이 공장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나 가끔 궁금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리고 목차를 보면 두 번째 방문한 공장이 콘돔 공장, 세 번째가 브래지어 공장인데,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주제 아닙니까? 평생 그런데 가볼 일도 없을 텐데.) 기다리면서 읽기 좋겠다 싶었는데, 기다리던 사람이 생각보다 빨리와서 였는지, (아니면 콘돔 공장 방문기가 생각보다 재미없어서 였는지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제대로 읽지 않고 책장에 잘 모셔두었다가, 6년 만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적당히 얇아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나왔다가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살 때도 몰랐고, 6년 동안도 몰랐는데, 이 책이 알고 보니 김중혁 작가님이 지은 책이더군요. 그 작가님의 존재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그러니까 그 분의 책을 읽어서는 아니었고, 영화평론가로 유명하신 이동진 작가님이 진행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이 2시간 동안 책 한권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인데요, (지금은 유튜브로 이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읽었던 책이나, 읽고 싶었던 책을 다룬 에피소드가 많아서, 이동 중에 차에서 즐겨 듣습니다. (사피엔스, 이기적 유전자, 이런 사회과학 도서도 다루고, 설국, 채식주의자 같은 소설도 다룹니다.) 아니 그런데, 6년 전에는 몰랐는데, 이 분이 그 분이더라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 괜히 반갑고 정들지 않습니까. 저는 좀 그런 편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 또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읽었는데요, 적당히 가벼운 내용이라, 적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사실 조금 더 심층취재스러운 내용을 기대하고 산 책이었습니다만, 공장 훑어보기 정도의 책입니다. 공장 설비나 제조공정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전체적인 공장의 느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인터뷰,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이나 공장의 간단한 역사 등을 다룬 책입니다. 사실 부제를 좀 더 눈여겨 봤다면 대충 눈치 챘을텐데, 부제가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거든요. “산책기”에 방점이 찍힌 부제인데, 제 눈에는 “입체적인”만 들어왔습니다. (사람은 역시 보고싶은 대로 보고 삽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공장이 어떻게 운영되고, 이런 것들을 알고 싶은 분은 이 책을 굳이 읽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 책은 여행기도 아니고, 산책기가 맞거든요. 정말 가볍게 평생 가볼 일이 별로 없는 공장을 작가와 산책하고 싶은 분들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문에 이 책을 어떤 방향으로 쓸지에 대한 작가님의 고민도 드러납니다. 무언가를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는, 허구를 쓰는 소설가로서 공장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항상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해소 차원에서 방문한 공장에서, 결국 공장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이므로, 사람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든, 책상에 앉아 글을 쓰든, 모두는 인간이 하는 일이고 세상은 그렇게 여러 인간들의 다양한 행위로 채워진다고 정리합니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초라한 행색의 할아버지’가 샤넬 종이 가방을 소중히 들고 계신 모습을 보고, 그 안에 뭐가 들었을지 작가님이 상상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화장품인지, 손녀 선물인지, 궁금해 합니다. 저는 그 할아버지께서 누군가가 의뢰한 물건을 배달 중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뉴스에서 한 번쯤 보셨을 수도 있는데, 연로하신 노인 분들을 고용해서 운영하는 지하철 택배 회사가 있거든요. 지하철 이용료가 무료이신 노인 분들의 이점을 활용해서, 지하철로 이동할 수 있는 구간의 택배를 운송하는 서비스입니다. 의뢰인은 수수료가 낮고, 어르신들 입장에서도 용돈벌이로 꽤 괜찮은 일거리라, 오랫동안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쪽 업계에서도 많이 이용해서, 저는 그 장면이 택배 운송 중인걸로 보이더라고요. 뭐 사실은 알 수 없고, 제 예상이 맞거나, 작가님이 생각한 여러가지 중에 하나거나, 아니면 또 다른 이유겠죠. 이렇게 사람은 역시 보고싶은 대로 봅니다.


이전 07화 [월간책방]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