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MD Feb 25. 2022

[아버지의 서재] 와인이야기 여섯번째 - 디캔팅&와인잔

'디캔팅'(Decanting)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처음 접한 건, 그 유명한 '신의 물방울'에서였습니다. 죽은(혹은 상한) 와인도 살려내는 화려하고 신기한 기술로 등장해서 시선을 확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일상에서는 사용해본 적도, 사용하는 걸 본 적도 없습니다.(고급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가본 적이 없으므로 알리가 없습니다.) 주로 오래된 빈티지의 와인을 마실 때, 사용한다고 하니, 주로 2-3만 원 대의 와인을 음용하는 저로서는 쓸 일이 없는 기술이긴 합니다. 


제 수준에는 4,900원짜리 무인양품 와인잔이 딱인데, 샴페인은 좀 긴 잔에 마시고 싶긴 하네요.




[와인의 풍미를 더하는 디캔팅]

와인은 숙성될 때까지 10년 또는 20년씩 재워두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오랜 숙성기간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와인은 25°C이상의 환경에 장시간 놔두면 열화 되고 만다. 그렇다고 낮은 온도의 냉장고에 두면 너무 저온이라 숙성이 진행되지 않는다. 반면 10년 이상 숙성되어 견고하고 거친 와인을 맛있게 만드는 손쉬운 방법은 ‘디캔팅(Decanting)’을 하는 것이다. 디캔팅은 와인을 디켄터라는 용기에 옮기는 것이며, 목적은 찌꺼기를 걸러내고 투명한 와인을 얻기 위함이며 또한 와인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디켄터에 담으면 공기와 닿는 표면력이 병보다 넓어지게 되어 더 많은 공기와의 마찰을 통해 깊이 잠들어있는 견고한 와인을 깨워 신맛, 떫은맛 속에서 단맛이 살며시 내밀고 향긋한 향이 흘러나오게 되어 와인 본연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된다.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는 워낙 힘이 센 무통 로칠드를 마실 때는 12~24시간을 기다려야 제대로 된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럴 때는 반드시 병의 뚜껑을 막아놓아야 한다. 디켄터에서 디켄터로 반복해서 옮기는 이유는 타닌이 아주 강한 와인을 빠른 시간 내 부드럽게 만들고자 할 때 효과가 있다. 뜨거운 물을 식힐 때 컵에서 컵으로 반복하여 옮기면서 식히는 것과 유사하다. 올드 빈티지의 와인을 마실 때는 디캔팅이 필요한데, 와인이 오랫동안 누워있었음에 찌꺼기가 병의 측면에 기다란 흔적으로 남아있게 되므로 와인을 마시기 2~3일 전 병을 세워두면 찌꺼기가 병 바닥에 고이게 되고 이후 조심스럽게 병을 들어 디캔팅을 해야 입자가 작은 찌꺼기들이 제거되면서 와인의 묵은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와인의 격조를 더하는 와인글라스의 미학]

동일한 와인이라도 글라스가 다르면 맛과 향이 다르게 느껴진다. 통상 화이트냐 레드냐, 스위트냐 드라이냐, 거품이 있느냐 없느냐로 잔을 구분하지만 와인의 특성에 따라 보르도냐 부르고뉴냐에 따른 구분도 한다. 화이트 잔은 레드에 비해 지름이 작고 표면적이 작은데 이는 혀끝에 떨어지는 폭을 좁히려는 목적으로 이는   화이트의 주된 맛인 신맛을 혀가 덜 느끼도록 한 것이며, 작은 표면적은 주위로부터 열을 덜 뺏기도록 고안된 것이다. 레드 와인잔은 잔의 지름이 크다. 잔을 기울이면 넓은 쪽을 유지하여 입으로 떨어지도록 의도한 것이며, 화이트보다는 향기가 훨씬 복합적이므로 혀의 다양한 부위에 닿도록 고안된 것이다. 안으로 구부러진 끝은 향을 최대한 머물게 하고 빈 공간에 오랫동안 향을 잡아두도록 한 것이다. 때문에 레드 와인은 잔의 3부 정도만 채운다. 스위트 와인을 위한 잔 또한 끝이 안으로 모아져 있으며 구부러진 각도가 심하다. 이것은 잔을 기울였을 때 단맛을 잘 느끼는 혀끝에 와인이 닿도록 한 것이다. 거품이 있는 스파클링 와인잔은 일반 잔보다 길쭉하게 생겼다. 솟아오르는 거품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르고뉴 와인잔은 향이 피어나기 쉽게 하고 향기를 증폭시키기 위해 잔의 지름을 넓게 한 큼직한 글라스이며, 보르도 와인잔은 떫은맛이 단숨에 퍼지지 않게끔 달걀형의 길쭉한 글라스를 쓴다. 어쨌든 와인잔의 요건 중 첫째는 투명하고 무늬가 없어야 와인의 색을 볼 수 있게 되며, 둘째는 얇아야 한다. 두께가 얇을수록 입술과의 거리가 덜 느껴져 잔을 기울이는 순간에 와인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모두 충족하는 명품 와인글라스로는 이탈리아의 자페라노 Zafferano와 독일의 슈피겔라우 Spiegelau, 11대째 대를 이어 만드는 오스트리아의 리델 Riedel이 있다. 리델 와인잔은 2000년 6월의 남북정상 회담 시 김정일이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1993년 산 샤토 라투르와 함께 준비한 것이며, 2017년 트럼프 대통령 방한 만찬에 사용된 잔이기도 하다. 





이전 16화 [아버지의 서재] 와인이야기 다섯번째 - '화이트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