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예나 Sep 24. 2024

오션토피아

In the aquarium1

[옥토]     

 -잠시 후 ‘옥토 쇼 타임’이 시작됩니다. 아쿠아리움에 오신 방문객들께서는 관람을 원하시면 옥토 수조 앞으로 모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아쿠아리움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옥토 쇼 타임’ 알림 방송이 곳곳에서 울리자 흩어져있던 방문객들은 앞을 다퉈 몰려들었다. 선반에 비치된 방석을 하나씩 쥐고서 이들은 자리를 채워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토 수조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원을 이루었다. 아쿠아리스트 영인이 옥토 수조가 있는 단상으로 걸어 나오자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가 힘찬 박수로 응원해 달라고 외쳤다.

 영인이 허리를 구부려 인사하자 수조 안에 있던 옥토 역시 몸통을 구부려 인사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이 흉내문어는 일반문어보다 몸이 가늘고 다리가 길어요. 그래서 얼핏 보면 낙지처럼 보이기도 하죠.

 영인이 수조 안으로 손을 슬쩍 집어넣자 옥토가 빨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뗐다. 그리곤 몸통을 인간의 손 모양처럼 만든 뒤 영인과 악수를 하는가 하면 그녀가 던진 공을 주워오기도 했다. 본격적인 쇼 타임이 시작되기 전 갖가지 잔기술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흉내문어의 피부에는 색소 세포가 있는데 근육과 연결되어 있어요. 근육이 색소 세포를 수축시키면서 순식간에 몸의 색을 바꾸는 거죠. 심지어 질감까지 바꿀 수 있답니다.

영인이 수조 속으로 커다란 미로 모형을 집어넣자 옥토는 이 미로가 마치 처음인 것처럼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간을 탐색하여 줄을 치는 거미처럼 모든 다리를 이용하여 공간을 감지한 옥토는 요리조리 미로를 헤쳐 나갔다. 때론 장대를 뛰어넘듯 높은 벽을 기어오르기도 했고 다리를 모았다가 쭈욱 뻗치며 로켓이 발사하는 것 같은 모양새로 나아가기도 했다.     

 ‘오늘따라 영인이가 기분이 좋아 보이네. 그놈이라도 왔나?’

 옥토는 관객을 휘익 둘러보았다. 영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성이 가끔 일터로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폐장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나간다는 걸 옥토는 알고 있었다. 옥토가 처음부터 영인의 감정이나 기분을 읽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속마음이 조금씩 알아차려졌다. 옥토는 언제부턴가 영인과 호흡을 맞추는 이 쇼타임이 기다려졌다. 그녀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긴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초능력 따위가 없어도 상대의 마음을 읽는 게 가능하다는 걸 어느 순간 옥토는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너무도 좋아지면,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 흠모하게 되면 상대에 대한 모든 것 저절로 알아졌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였다.

 드디어 미로의 마지막 관문까지 통과한 옥토는 수조 밑에 깔려있는 진흙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몸의 색을 진흙 색과 비슷하게 변화시켰다.

 -엇, 문어가 없어졌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옥토는 진흙에서 나 동시에 본래의 몸 색깔로 돌아왔다. 그리곤 장식용 수초를 머리 위에 얹고는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예상했던 대로 적절한 시점에 폭소가 튀어나왔다. 옥토는 폭소가 약해져 갈 때 즈음 자신의 머리와 몸통을 수초의 색깔과 질감으로 바꾸었다. 커다란 수초더미가 마구 돌아다니는 것 같은 형국이 연출되자 아까보다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흉내문어는 먹물이 없기 때문에 천적을 피할 때 흉내 내기 필살기를 쓴답니다. 흉내가 자신의 무기인 셈이죠.

 이제 마지막 변신만을 앞두고 있었다. 영인의 호흡에 맞춰 피부와 질감을 바꾸려던 그때 저 멀리서 낯익은 음성이 허공 내리 꽂혔다.

 “대-왕- 문어님!”

 그 짧은 단어 옥토를 그대로 정지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옥토는 바닷속으로- 과거 자신이 머물렀던 고향으로- 빨려 들어다. 그곳에선 바다생물들이 양옆으로 늘어서서 대왕의 길을 터주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아쿠아리움에 잡혀오기 전 바다를 관장하던 통치자였다. 과거 자신의 모습이 섬광처럼 번쩍이던 찰나 아까보다 더 생생한 음성이 세 개의 심장을 관통했다.

 “대-왕- 문어님!”

 옥토는 이제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영인은 관객들을 향해 마지막 멘트를 던졌다.

 -자, 무엇으로 변신했죠? 바로 기다란 바다뱀으로 변신 성공!

 -바다뱀 아닌데요.

 영인은 으레 장난치는 관객들이 있다는 걸 알기에 여유 있는 웃음으로 응수했다.

 -에이, 거짓말하면 안 되죠. 바다뱀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수조를 가리킨 영인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수조 안엔 며칠 전 자신이 바다에서 데리고 온 거북이 한 마리가 들어있었다. 영인은 그런 옥토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방문객들은 그저 힘찬 박수를 보낼 따름이었다.     

 옥토는 영인의 속마음이 물결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러나 이미 대답할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대신 자신을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는 충복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채워나갈 따름이었다. 대-왕- 문어님! 인간에게 잡혀가던 날 마지막까지 바위 뒤에 숨어 절규했던 그 음성이 옆에서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