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이 참 곱다!

일상 풍경

by 명선우

내 앞에서 벌어진 풍경이었다.

허리가 90도로 굽으신 할아버지께 식당 사장님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받으라고 했다. 브레이크 타임을 앞둔 시각, 식당으로 들어오신 할아버지가 주문하신 메뉴는 육개장이었다. 육개장을 열심히 드시고 계산대 앞에서 지갑 깊숙한 곳에서 꼬깃꼬깃 4번 접어진 우표 크기만 한 만 원 한 장을 꺼내어 계산을 하셨는데, 할아버지를 보는 사장님의 눈빛이 아련하게 변했다. 짐을 주섬주섬 챙겨 문턱을 넘는 할아버지를 쫓아 나오셔서 그 자리에서 허벅지에 대고 구겨진 만 원짜리를 몇 번이나 비벼 곱게 펴서 돌려주시며 한마디를 건네셨다.

“어르신! 건강하시고요. 돈은 다음에 주세요!”

할아버지가 괜찮다고, 받으라고 해도 기어이 사장님은 어르신 손에 돈을 다시 놓고 가셨다. 그냥 그 눈빛이 말을 안 해도 알 것만 같았다. 그 마음이 곱다.

며칠 후,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집에 있는 삼겹살 몇 덩어리, 숯불에 구운 곱창김, 유기농 참외 4개와 잘 익은 열무김치를 챙겨 엄마 집으로 향했다. 입맛이 없어 밥을 못 드시는 엄마 앞에 앉아 잘 구운 삼겹살에 열무김치를 올려 먹여 드렸다. 같이 먹어 드리니 3-4번 숟가락질하실 것을 10번 정도 더 드셨다. “맛있다, 맛있다” 하며 효과음을 내며 같이 먹어 드리니 엄마가 그 기분에 따라 잘 드셨다.

엄마는 자신과 밥을 먹어 준 딸이 고마운지, 딸이 음식을 챙겨 왔던 보냉백에 기어이 동사무소에서 받은 마스크 두 박스와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3장을 챙겨 주셨다. 독거노인들을 위한 대민 서비스 물품인데, 엄마는 그거라도 건네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으셨나 보다. 그 마음이 눈물겹게 참 곱다.


아는 언니의 남편이 얼마 전 빌딩 건축 현장 3층에서 추락하셔서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전화로 “아이쿠야. 어떡하냐? 언니는 괜찮아? “라고 물었고, 혹시 남편이 먼저 떠날까 마음 졸이며 일주일간 눈물로 밤을 지새운 언니는 나의 문자 한 구절에 또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위로를 건네는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준 언니의 마음이 참 곱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 웨딩반지를 출고하며 무광택으로 처리해야 할 표면을 광택으로 내보내어, 나이 어린 손님께 허리 굽혀 사과하는 것도 모자라서 돈으로 보상을 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내 잘못을 변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시간을 30분만 주면 해결될 일을 기어이 돈으로 되갚길 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논리 정연하게 말도 잘하고, 손해 보지 않고 모든 행위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똑똑하다고 배우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상처가 컸다. 돈을 떠나 서로 처음 상담 시 나눴던 고운 마음과 신뢰, 조언들이 돈으로 가치가 나뉘고, 그것을 돈으로 보상받아야만 위로가 되고 화가 풀릴 것 같다고 씩씩대는 젊은이들에게는 한낱 상술과 당연한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폄하되었다. 사람에 대한 환멸이 느껴졌다.

자기가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아 늘 손해만 봤던 어른들이 자기 자식에게만은 인간사 살아가며 야무지게 챙기고 손해보지 말라며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도의 융통성도 없이 저울에 사람의 마음을 달아볼 수 있겠는가? 객관적인 저울에 주관적인 기준의 ‘추’를 올려놓고 사람의 마음을 재다니… 내가 한 잘못을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냉정하고 야박한 마음씀이 바라보기 아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퇴근길. 집으로 가는 길에는 동네 골목시장을 지났다. 늘 늦은 시간까지 떡집은 열려 있었다. 아침 출근길 2개에 오천 원이었던 포장 진열된 떡은 밤늦은 시간 3개에 오천 원으로 바뀌어 있어도 몇 개 줄어들지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잘 먹지도 않는 포장떡 3개를 사서 랩 포장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단물이 터져 나오는 개피떡 몇 개를 씹어먹어 주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주인은 알아줄 리 없는 내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랐다. 늘어져 있는 포장떡 하나가 줄어든 것이 당신의 쓰린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너무나도 고운 꽃잎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마음을 긁고 가는 갈퀴가 되기도 한다. 오늘 갈퀴에 끌긴 마음이 개피떡 몇 개가 반창고가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별의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