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꾹이가 떠난 뒤

by 꾹이누나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레 찾아온다지만 우리의 이별은 너무도 때 이르게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우리의 첫 강아지는 이토록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우리 곁을 떠났다.



2022년 크리스마스 며칠 뒤

꾹이가 허리를 삐끗했다. 비글이라 워낙 우다다다 뛰어다니길 좋아하던 강아지인데 하필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매일밤 하던 산책을 며칠 거른 터였다. 그래서일까 스트레스가 쌓였던지 집에서 장난치다가 허리를 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강아지의 걸음걸이가 조금 차분해졌다고 생각했을 뿐, 우리는 꾹이가 아프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다음날(12.29)

꾹이 뒷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전에 식구들이 나가면 잠을 몰아자곤 했기 때문에 그저 평소처럼 잘 자고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저녁부터 뒷다리를 못쓰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동생이 동네 동물병원을 들렸다 2차 병원을 가보라는 소견을 받고 저녁시간에 운영하는 긴급의료센터에 데려가보니 엑스레이 상으로 디스크가 의심되니 MRI를 찍어야 한다고 했단다. 연말이라 MRI 일정이 4일 후에나 가능한 상황이었고, 다급한 우리는 인터넷을 뒤지다가 반려견 디스크에 한방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바로 한방치료를 한다는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기분 안좋은 꾹
기저귀 채워서 사나이 자존심에 금 간 꾹


그 다음날(12.30)

동물병원에 갔더니 후지마비이고 통증반응은 미약하게나마 살아있는 상태라고 해서 추천받은 대로 침치료, 레이저치료, 전기침치료를 모두 병행하였다. 평소 잔병치레는 기껏해야 과식에 의한 변비 정도였던 건강한 강아지라 병원진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으나 치료 후 앞다리로 서있으려고 하고 식탐도 있었기에 증세가 호전되는 듯했다. 새벽에 마비된 뒷다리를 끌고 제 밥그릇으로 찾아가 사료를 찾아먹기도 하고, 우리가 부엌 식탁에서 식사를 하자 평소처럼 한 입 달라고 다리를 끌고 와 밑에 앉아있기도 했다. 개가 죽을 때가 되면 곡기를 끊는다던데, 꾹이는 매끼 너무 잘 먹었기에 그렇게 갑작스레 떠날지 몰랐다. 병원에서 살이 더 찌면 안 된다고 해서 먹던 고기 한점 덜 준 게 이제 와서야 한이 된다.


치료가 힘든 꾹


이후 1.2, 1.4

두 번의 한방치료를 더 진행하였다. 그런데 꾹이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급기야는 앞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다시 MRI를 찍고 수술 일정을 잡아보려 했으나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답변을 들었다. 뒷다리만 마비됐을 땐 최악의 상황으로 뒷다리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휠체어에 태워 키워보자고 결심했던 우리였다. 앞다리까지 굳어가니 병원에서 말했던 척수연화증이니, 사지마비니, 사망이니 했던 게 기억이 났다. 최악은 뒷다리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최악이 현실이 된 것이다.


1.1 앞다리는 멀쩡했던 꾹


밤마다 아파서 낑낑거려 엄마가 꾹이 자리 앞에 이불을 펴고 며칠을 그렇게 돌봤다. 옆에 사람이 없으면 낑낑대며 그렇게 누군가라도 옆에 있어보라며 불렀다. 타지에 있던 나는 꾹이의 앞다리가 성할 즈음에 집에 들러 새해 복은 모두 꾹이가 받으라며 철없는 인사나 던지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1.6 금요일 밤, 한주 내내 꾹이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퇴근하고 본가로 향했다.


다리가 멀쩡했을 땐 꾹이가 방석을 엄마방으로 끌고와 자곤했다


금요일 밤(1.6 )

당일 저녁 꾹이의 호흡이 너무 불규칙해 급하게 동네 동물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너무 늦었고 연명을 원하면 긴급의료센터를 찾아가 보라고 답변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꾹이를 집에서 보내주기로 하고 그대로 다시 데려왔다. 마지막으로 본, 그러니깐 일주일 전 꾹이는 그래도 멀쩡한 앞다리를 세워 집을 떠나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 새에 만난 꾹이는 호흡이 불규칙한 상태였다. 통증이 심해 가족들의 손을 다 한 번씩 물고서는 그마저도 힘이 없는지 불규칙하게 숨을 내쉬면서 풀린 동공으로 이리보다 저리보다 할 뿐이었다. 그런 꾹이의 모습을 보자니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안타까워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금요일 자정이 조금넘은 시간(1.7 12:10)

꾹이는, 우리 식탐강아지는 이날도 점심에 삶은 달걀을 먹고 저녁에도 습식사료를 전부 비웠다고 했다. 그렇게 세끼를 꼭꼭 챙겨 먹은 강아지는 남은 힘을 다해 꺼져가는 숨을 내쉬면서 제 앞에서 울고 있는 식구들의 모습을 눈 굴리며 담더랬다. 그렇게 이리보고 저리 보다가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마지막 숨을 뱉었다.


평소에 남의 집 개들은 다 한다는 '손'이나 '앉아' '기다려'는 끝끝내 안 해주던 멍청한 강아지 주제에 타지에 사는 나와 늦게 퇴근하는 엄마의 시간을 꼭꼭 기다리다가 모두 집에 오고서야 떠났다. 어쩌면 너무 똑똑해서 자기 하기 싫은 건 절대로 안 하던 강아지, 어릴 적 소파 물어뜯고 똥오줌 못 가린다고 아빠한테 호되게 혼내서 끝끝내 아빠 손은 제일 세게 물고 간 강아지, 맘에 안 들면 그 사람 신발에만 똥 싸고 침대밑으로 숨던 영악한 강아지. 그렇게 멍청한 척만 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똑똑했던 내 강아지가 7년의 짧은 시간 끝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꾹이가 떠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강아지 장례식장이 정말 몇 없다는 사실이다. 엉엉 울면서도 너무 늦기 전에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근교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뒤졌고, 아침 일찍 전북 모처에 있는 장례식장을 찾았다. 추모실에는 사전 요청한 꾹이 사진 5장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자니 이별이 너무도 실감 나지 않았다. 사진 속 강아지는 해맑게 우리를 보고(사실은 카메라 뒤 간식을 보고) 웃고 있는데 우리 앞의 고작 7살 먹은 강아지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끝끝내 밥은 잘 먹어 아직 가시지 않은 윤기를 지닌 채 꼭 깊은 잠에 든 것 마냥 조용히 누워있었다. 보들보들 극세사를 좋아하던, 장판에 그 큰 배를 따뜻이 지지면서 잠드는 걸 좋아했던 강아지가 눈앞에서 보고 있어도 생경한 화장터에 들어가 한 줌 재가 되어 나왔다.


극세사를 좋아하던 꾹


2015년 12월 14일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비글 꾹이는 2016년 2월 14일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강아지라곤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우리 집에 왔다. 쓰레기통에 꼭꼭 숨긴 닭뼈랑 초콜릿도 기어이 찾아먹어 우리를 기겁하게 했던 비글은 잔병치레 하나 없이 7년 하고도 3주를 살다가 우다다다 떠나버렸다. 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고작 50대 초반 남짓, 그래도 두 자릿수는 넘겨주기를 바랐는데 우리 멍청이 중년 강아지는 뭐가 그리 급했을까.


꾹이는 사실 아직 자기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걸 모를지도 모른다. 끝끝내 실패한 사회화 훈련 때문에 다른 강아지를 싫어했고 무서워했는데 그곳에는 강아지 친구들만 많을 것 같아 또 무서워서 도망치고 오줌 지리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개소리도 늑대소리도 아닌 이상한 꾹이만의 소리로 오우오오 오우오오 하고 울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만 2개월 꾹
말썽쟁이 우당탕탕 지랄견 꾹
엄마 소유권을 주장하던 꾹이와 최애 장소였던 엄마 가게
산책하면 꼭 안아달라던 게으른 강아지
차가 좋지만 이날(바다 놀러간 날)은 조금 지쳤던 꾹
차 타는 걸, 창문에 걸터서 바람 맞는 걸 좋아했던 꾹
기차역까지 누나 마중나오던 꾹, 내가 떠날땐 꼭 빤히 쳐다보던 꾹




언젠가 지인이 수의대를 추천했을 때 냄새나는 짐승은 모두 싫다고 했던 나는 꾹이를 만나고 꾹이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다. 개에 쫓긴 적이 있어 개가 무섭고 싫었던 나는 이제 명실공히 '꾹이누나'가 되었다. 아직 이 옷 저 옷에 박힌 꾹이 털이 모두 빠지려면 멀었기에 그때까지만 조금 슬퍼하다가 꾹이를 보내줘야겠다.


꾹아,

그날은 누나가 너무 슬퍼서 우느라 아무 말도 못 했는데 바쁘단 핑계로 자주 못 놀러 와서 미안해. 마지막에도 그냥 최선을 다해 치료해볼걸 골든타임이니 뭐니 다 놓쳐서 미안해. 잘 가 내 강아지 꾹아! 엄마가 꾹이는 네덜란드 공주가 될 거래(꾹이는 수컷이지만 말이야)!


나중에 만나거든 꾹아, 꾸꾸, 꾹이, 정꾹, 작은꾹 뭐라고 부르던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멀리서도 타타타 소리 내며 우다다다 달려와줘 알겠지?


꾹아 사랑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꾹이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지적 비글시점'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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