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한 건 3월. 일찍부터 비가 온 날이다. 새로 살 집까지 가는 길은 이삿짐 아저씨의 탑차 한 자리를 신세졌다. 세상 어색할 드라이브이라며 그 전 이사 때만 해도 어후 고개를 저었던 일이, 몇 년 새 고민할 꺼리 축에도 못 들게 됐다. 그 뿐인가. 트럭 토크쇼를 진행해버리는 넉살과 능청은 무슨 일. 나이 먹으며 느는 것 중엔 좋은 것도 꽤 많다.
“사장님들 힘드셔서 어떡해요. 하필 비가 와서"
- 괜찮아요 장마에도 하는데요 뭘.
그 손님에 그 사장님. 관록의 답변에 내 토크 호르몬이 무섭게 분비된다.
“사장님 아무래도 저 잘 사려나 봐요. 왜 이삿날 비 오면 잘 산다잖아요.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 ㅎㅎ 전문가는요 무슨
“에이, 어렵게 모셨는데 말씀 좀 해주세요”
- 글쎄요. 비 온 날 이사한 집이 잘 살았단 후일담 같은 게 많아서 그런 말이 생긴 걸 수도 있겠죠. 아님 그런 걸 수도 있어요. 비 오면 이사하기 힘드니까. 기운이라도 내라고 누군가 시작한 말이 막 퍼진 거“
굉장한 설득력. 왜인진 어떤 연구결과가 뒷받침된 말보다 수긍됐다. 그 중 더 믿음이 쏠린 쪽은 후자. 우리나라 사람들 워낙 으쌰으쌰 하는 거 좋아하는 데다, 첫 번째처럼 비 오는 날 이사 가면 잘 사는 게 통계로 입증된 거라면, 모든 게 돈이고 장사인 시대에 벌써 우천 시 할증 시스템이 도입되고도 남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아침 일찍 내린 비가 그 밤까지 이어진 날에 이사한 혹자는 어찌 살고 있을까? 그 삶 좀 나아졌을까?
라는 물음에 그 혹자, 위 시쳇말을 약간 바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삽니다. 살던 그대로.
약간의 긍정을 가미하자면, 않습니다. 못 살지는.
윗집 휴대폰 진동음까지 들리던 층간소음 끝판왕 집에서, 새벽 고요의 한가운데인 듯한 집으로 왔으니 행운이요. 여기 동남아인가 착각이 일 만큼 오토바이가 종횡무진하던 동네에서 루돌프 뛰노는 북유럽 같은 마을로 건너왔음에 행복이로다.
하나라도 나아지려고 하는 게 이사고, 하나라도 나아진 데로 가는 게 이사니까. 이사라는 건, 조금 더 잘 살게 되는 점 한 가지를 확보하는 활동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꼭 내 집 마련해 가는 이사만 잘하는 이사고 잘 가는 이사는 아니란 말씀.
내집 마련 물론 너무 중요하지. 중요한데 나도 하고 싶은데 우리한텐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네 글자가 또 있다는 걸 너무 오래 까먹고 있는 것 같다. 까먹지 않으면 좋겠다. 태초에 내집 마련 전에 이 네글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도 정겹다. 보금자리.
농으로 건네는 이사 팁 하나 적으며 마무리한다.
만약 현재 삶이 고달픈데, 플라시보 효과가 매우 잘 나타나는 분이 있다면. 내년 장마철 집중호우 때에 이사해보시는 건 어떨까. 놀라울 만큼 행복해지실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