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에 연연하는 편이 아니다. 성적, 몸무게, 기념일 등등을 가리지 않고 그렇다. 부연 할 것 없이 뼈 속까지 수포자. 숫자 보기를 돌 같이 해 온 인생이다.
그런 내게 최근, 사건이 생겼다. 수에 관한 한 차분한 나를 요동치게 만든 숫자를 만난 것.
단 두 자리에 불과한 이 숫자는 등장만으로, 수 앞에선 마치 마더 테레사와 같은 나의 평정심을 잃게 했는데, 그 무시무시한 숫자는 다름아닌 40. 맞다. 우리가 사십이라고도 읽고 마흔이라고도 말하는 그 평범한 숫자.
이 특이점 없는 숫자가 어찌 내게는 험한 것이 되었는냐. 그 이유는 내가 이를 읽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40. 그것은 사십도 마흔도 아니다. 그저,
내일부터의 내 나이.
여기도 저기도 아니고 내가, 내가 마흔이라니. 서른살 됐을 때 동생이 그려준 계란 한 판 그림에 색깔이 여직 선명한데. 그 계란도 아직 부화가 안 됐는데 난 왜, 어떻게 마흔이야.
12월 31일에, 내 한 시대가 빈 나절도 안 남은 시간에. 안 아련하기도 힘들 만한 모든 상황을 다 갖췄는데, 웬걸. 내 주마등이 고장이다.
원래 이런 상황은, 지그시 눈 감기 무섭게 파란만장한 30대의 필름이 촤르르 흘러가는 그림이어야 하는데 나는 몇몇 장면만 댕강 떨어지고 끝이니. 이건 내 기억력의 문제일까. 추억은 힘이 없다는 관점에서 논해야 하는 걸까. 아님 내 무의식의 선택을 받은 몇 안 되는 시절에게 마땅한 예우를 갖추는 게 맞는 걸까.
날이 날이니 구색 맞춰, 그러니까 저의 지난 10년. 그 찬란했던 30대는 말이죠 하면서 과거의 영광에 젖어도 보고, 그 상처는 다 아물었나 찔러도 보면서 이제 하룻밤 자고 나면, 십 년을 통으로 묶여 창고행 되어버릴 내 30대를 속속들이 들춰봐야 하는데. 왜 하필 오늘의 나는 이렇게 무기력할까.
일곱 시간도 안 남은 30대에 미련 한가득이라? 아니. 오늘이 올해의 366일째 날이란다. 윤년이라 여느 해보다 하루가 더 있었다나. 하루가 덤처럼 더 있었단 걸 알았으면 더 귀하게 보냈을 텐데! 는 개뿔. 알았어도 똑같이 살았을 거고, 지금 하루를 더 줘 내일이 12월 32일이라 하더라도 살던 대로 살았을 애다. 그러니 아쉬움 같은 류는 아니고,
아무래도 이거. 내 30대의 결실이라고 패키징 해서 간직할 만한 명료한 게 없는 것 같음에서 기인하는 불만족, 낙심, 자기 연민 또는 반성.
하지만 그게 전부인 30대였더라도, 마흔에 갖고 가기에 어느 것보다 좋은 실패요 미완성이자, 자기 성찰이니. 백해무익한 30대는 아니었다고 토닥이는 평도 해주고 싶다.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살았던 거 아니까.
애 같이 어른 같이 애어른 같이 39.9년을 살았다. 마흔의 왕관을 쓸 차례고 자격도 충분하다. 마흔과는 기꺼이 악수하겠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불혹은 시기상조.
39.9년을 살았어도 나는 아직 유약하다. 사회의 헛기침에 영혼이 섬세히 반응하고 관계의 인기척엔 소스라친다. 그런데 이런 내가 어찌 다른 무엇도 아닌, 세상사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을 그림자로 두겠는가.
나는 마흔에도 40대에도 근사한 것엔 반하고 달콤한 것엔 홀리고 좋은 것엔 탐하기를 애써 참지 않으며 살고 싶다. 나를 해치고 남을 망가트리는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 흔들리고 갈팡질팡 하려 한다. 그런 내게 불혹은 경전이자 족쇄일 뿐이다.
엉겁결에 치렀지만 마흔 전야제는 이 정도 한 것으로 아쉬움 갖지 않겠다. 내 나이 마흔, 나 마흔살이야는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 봐도 입에도 마음에도 아직은 안 붙지만, 마흔에도 금방 적응하는 동물이겠지 나는.
불혹한텐 빌어먹을 마흔 적응 끝나는 대로 갈 터이니 좀만 기다려. 근데 불혹은 어찌 저찌 한다쳐도 지천명은... 답이 없네.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십 년 후긴 하지만, 내가 내 맘도 모르는데 하늘의 뜻을 무슨 수로. 거 그 나이 될 사람, 살 사람 생각은 안 하시고 너무 있어 보이는 뜻은 다 갖다 붙이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일단 쉰 보다는 마흔이 진입장벽이 낮을 듯 하니, 40대에 먼저 이 몸 던져 보겠습니다. 살살 다뤄주세요 아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