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와 본 첫 집은 영 별로였다. 집 구하는 일이 어찌 첫 술에 배부르겠냐만, 전 집은 그렇게 구했던 터에다 너무 잘 얻기도 한 터에 구관이 너무 명관이려나보다 걱정이 들려던 참. 부동산 사장님이 신상이 있단다. “지금 본 집 보다 조금 좁아도 돼요? 그럼 어제 막 나온 데가 있는데. 사진도 못 찍었어요 어제 나와서"
짐이 원체 많아 좁은 집과는 타협 없는 나지만, 가는 길에 있다는데 굳이 안 볼 이유도 없지 싶어 들린 곳.
… 사장님 좁은 게 뭔가효? 집을 보는 순간 들린 것은 러브하우스의 그 음악. 따라라라란. 따라라라라라.
더 좁고 나발이고 나는 이미 매혹당했으니, 방만한 테라스에 두 눈은 하트가 됐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다락방 감성의 벽면엔 두 다리가 풀렸다.
"사장님 저 이 집 하고 싶어요"
부동산 사장님보다 더 놀란 건 같이 간 남자친구였다. "집을 이렇게 구하는 사람이 있어?" 잇츠 미. 지금 보고 계실 텐데요.
건물 앞에서 집주인을 기다리는 일은 마치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는 느낌 비슷했다. 어떤 분이시려나, 나 같이 백익무해한 세입자를 얻으시는 복 받은 임대인 분은?
임대인을 기다리는 막간 동안, 꼭 공연 전 붐업 MC분들이 그러하듯 부동산 사장님의 집에 대한 장점 브리핑이 시작됐다. 주인 분께서 임대사업자시라 시세 대비 저렴한 임대료, 지하철 역까지 도보 5분, 주인 옆 건물 거주로 상시 관리, 관리인 건물 내 상주, 건물에 융자는 단 돈 천만 원. 기막힌 서사였다.
부동산 사장님의 일타 브리핑이 끝난 후. 드디어 마주한 임대인 분은 연세 지긋하신 백발의 신사. 항상 난감한 게 아저씨, 할아버지, 아주머니, 할머니 같은 정감 있는 단어들이 결례인양 돼버린 시대다 보니 인사에 따로 붙일 호칭이 마땅칠 않다. 그저 사장님.. 선생님..
결국 담백하지만 허전하게 그러나 공손하게 안녕하세요. 그런데 이때만 해도 몰랐다. 내가 계약하고 싶다고 이 집이 나랑 막 계약을 덜컥해 주고 그런 집이 아니라는 걸.
"무슨 일 하세요?" -네, 저 회사 다녀요
"무슨 회사?" -회사 이름을 말씀드려야 하는 거예요?
"네" -아, 저 어디 어디 다닙니다
"거기 친구는 두 번째네요 우리 집에. 가서 얘기하죠"
어리둥절. 나 지금 면접당한 건가. 그렇담 일단 통과한 거 같으니 엄마 아빠한테 전화라도 드려야 하나.
부동산으로 가는 길. 남자친구가 말하길, 너 할아버지랑 얘기할 때 세어 봤는데 주차장에 CCTV만 8대가 있어. 예사로운 집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