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집주인 또 없습니다 1

by 씀씀


스물셋 상경해 서른아홉. 서울 살이도 16년 됐다. 빡빡한 땅에서의 타향살이가 눈물겨우려면 얼마든이었을 테지만, 나는 고생길도 그런대로 찰지고 재미져, 눈물때 같은 건 금세 말랐다.


품 밖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걱정은 자나 깨나 의식주였다. 옷이야 나 입고 꾸미는 일엔 도가 튼 딸년이니, 사 입으려거든 옷 같은 걸 사 입어, 멋 부리지 말고 따뜻하게 입어라는 걱정이셨고. 식도 마찬가지. 좋은 걸 먹어 맨 자극적이고 몸에 좋지도 않은 거 먹지 말고. 술 마시지 말고!


이제 남은 건 집. 보증금을 해주셔도 서울께서 워낙 콧대 높으신 땅인지라, 더 좋은 집 넓은 집엔 한계가 있었다. 당연한 거였다. 더 못 해줘 미안하단 엄마아빠의 말에 공감할 수 없으니 나는 효녀였다. 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에 왜 미안해하시는지 어리둥절. 두 분 품 안에서 직장 구해 다녀도 될 일이거늘, 박봉도 좋다면서 꿈 이뤘다고 뽀로로 올라온 게, 스물셋의 서울이다.


나는 롱런형 인간. 시작하면 쉽게 적을 거두지 않는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집이든. 함정이라면 시작이 어렵다는 것. 물건은 살 때까지 10번은 고민하는 편이고, 사람은 내게 10번은 잘하거나 일관돼야 맘을 연다. 감정도 같은 이치일 거니 문제는 집인데. 이건 내게 집에 관한 개똥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16년 서울살이 중 보금자리 삼은 곳은 단 네 집. 그중 자가는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 팍팍한 땅에서 나는 꽤 안정감 있는 타향살이를 해왔다는 평이 가능하다. 거기에 내가 꽤 좋은 세입자였다는 것과 내게 집과 집주인 복이 있었다는 훈훈한 평은 덤으로.


그래서일까. 성인이 되면 유년시절 학교엘 그리 가고 싶어 하는데, 난 옛집이 그렇게 가고 싶다. 꼭 집에서 살았던 장면 때문이 아니라, 연관된 일까지도 오버랩시켜 주는 장소가 가진 위대한 힘 때문이다.


16년에 네 집. 평균만 내도 한 집에 4년이니, 그 세월을 산 집에서의 희로애락이 한두 개이겠는가. 해서 아직도 옛 집 근처를 지날 때면, 혼자 아련 열매를 과다 섭취하곤 그때 그랬지 하는 기억에 사로잡히지만, 주거침입 네 글자에 내 추억놀이는 미련 없이 끝난다.


그럼에도 여운 질척거리는 집이 있으니 세 번째 집. 무려 7년을 살았다. 이사 온 위층의 층간소음을 못 버텨 박힌 돌인 내가 나오는 새드엔딩으로 작별한 곳. 나의 한 시대가 배어 있는 집을 불철주야 애쓰시는 윗집 발망치에 쫓겨 나온 마음이 얼마나 헛헛했냐면, 주인아저씨께 손 편지와 상품권까지 남겼을 정도였다. 이건 뭐 제 집 잘 부탁드린다고 눈에 밟히지만 떠난다는 그런 것도 아니고 말이다.


첫사랑 묻듯 세 번째 집 떠나보내고 둥지 튼 네 번째 집에서도 얌전히 4년을 살았으나 거기도 매한가지. 층간소음만 아니었다면 결혼 전까지 무난했을 곳을, 무난하지 않은 윗집을 만나 무난한 내가 떠나 주었다.


그렇게. 얼결이나 가히 운명적으로 지금의 집을 만났다. 얼마 전 쓴 바 있듯 층간소음은커녕, 건물 밖 소음으로까지 무해한, 그저 나만 조용하면 될 것 같은 곳.


산 지 불과 1년도 안 되어 아직 별 희로애락은 적립도 안 됐을 집을 두고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임대인. 다른 말로 우리 주인 할아버지 되시겠다.


아마도 ‘우리'에서 알았으리라. 본인이 현재 매우 할며든 상태임을. 나 역시 부정하지 않는 바. 지금 집의 임대인께서 너무 독보적인 캐릭터시라, 나 혼자 할며들 수 없어 심호흡하며 이 장황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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