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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숙녀 Oct 28. 2021

한의원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은 이유를 알았다


산과 바다, 짬뽕과 짜장 중 하나만 고르라는 것처럼 주사와 침 중에 고르라 한다면,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주사파다.


이유를 굳이 꼽자면 두 가지. 

첫째, 이제 살면서 맞아야 할 웬만한 주사는 다 클리어했다는 치사한 계산이 서서. 

둘째, 주사는 간호사 쌤 손 끝에서 울리는 경쾌한 '짝짝' 소리에 맞춰 한 번의 '따끔' 또는 '뻐근'만 참으면 상황 종료인 반면,

침은 따끔따끔따끔 뻐근뻐근뻐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침을 하기엔, 침술의 효능이 기가 막다는 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술 그것은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국밥을 먹으며 시원해하고, 절절 끓는 아랫목에 누워있으면서 아구 시원해라 하 것과 같은 이치였다. 분명 픈데 이상하게 시원 확실히 찌릿한데 희한하게 통쾌 것. 뭔가 나아가는 과정까지 치료이자 치유인 느낌이랄까?


그날, 십몇 년 만에 한의원을 찾게 된 것 역시 과거의 경험에서 축적된  데이터 때문이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에도 한의원은 그대로였다. 조금 세련 돼지긴 했으나 여전히 푸근한 게 서울에서 만난 고향 친구 같은.


신기한 건 여전히 손님, 그러니까 환자들이 꽤 됐다는 것. 생각해 보면 어느 한의원이든 갈 때마다 환자 못 본 적이 없었다. 

(준 선생님, 보고 계신 거죠?!)


"어디가 불편하세요?"

"아유,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동안"

"아이고 이렇게 딱딱하면. 기도 힘들었을 텐데"

"침 맞으면 한결 편안해질 거예요"


쌤... 슨 일인 거죠...?

어쩐지 저는 이미 편안해진 것 같아요...


현대인의 고질병이자 직장인의 숙명인 일자목과, 그 후폭풍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승모근들아! 내 오늘 너희에깐이나마 위안과 격려를 전하리라.


다행히도, 염려  뻐근한 침의 행렬 순탄지나 보내고, 긴장이 풀린 채로 따끈한 침대에 있자니 세상 노곤 게 여기가 천국인가 싶데 옆자리 환자 분과 의사 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번 주엔 괜찮더니 무릎이 왜 그럴까?"

"어제 마트를 갔었거든요"

"아, 쇼핑이 원하시던 대로 잘 안 되셨구나"


응? 뭐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이상한 대화였다. 그러니까 무릎이 왜  아픈 거냐 물었고 어제 마트를 가서 아프다고 말했어. 데 거기서 바쇼핑이 잘 안 되셨나 봐요 나온다고? 


아무리 뛰어난 핑퐁 해도, 

보통 저 흐름에선 마트에 갔는데 왜요? 또는 마트에서 넘어지셨어요? 정도가 최선이지 않나?


그런데 지금 이건 웬걸. 트에서 하도 돌아다녀 무릎이 말썽이라는 걸 바로 알아들은 걸로 모자라, 마트에서 오래, 많이 걸으셨나봐요라는 말을 '쇼핑이 원하시던 대로 안 됐나봐요' 라는, 굉장히 고급지고 감성적인 표현으로 구사하기까지... 대체 저건 어느 레벨의 공감 능력과 센스인 거지.


"너무 힘들었어요. 애가 안 되는 것만 사달라고 어찌나 조르는지 몇 바퀴를 돌았.."


옆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 딸내미 때문에 고생한 얘길 시작했다. 어제저녁, 나 역시 마트 바닥에 드러누 워 떼를 쓰는 여자 아이를 본 것 같은, 아니 반드시  무조건  봤었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었다.


무릎이 아파서 오신 건 맞겠지? 맞을 거야...

슴이 답답해서 오신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침술실에서 때 아니게 펼쳐진 다이나믹한 장보기가 끝나고 내게로 온 쌤은 여기저기 쿡쿡 눌러보더니, 느닷없이 여긴 이렇게 저긴   이렇게 하라며 스트레칭을 알려고는,

침 맞으면 편해지긴 하지만 나을 수는 없다며 귀찮아도 평소에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라는 폭풍 잔소리 한참이나 늘어놓으셨다. 

... 엄마...?


"치료는 짧고 생활은 길어요. 스트레칭해야 낫습니다? 또 안 봬야 좋은 건데 부탁드려요"


수납하고 나오는 길에도 환자들은 여전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특히많이 계모습 또한, 내가 익 한의원의 풍경 그대로.


여긴 진짜 변한 게 없구나. 

추억 하나 없는,  태어나 처음 와 본 이 동네 한의원에 내게 익숙한 장면들이 왜 이리 많담.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날(십 여 년 만에 한의원 간 날)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지.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래서 병원서 뭐라는데?"
"치료는 짧고 생활은 길대"

"뭐라는 거야"

"또 안 봤음 좋겠대"

"뭔 소리야 진짜"

"아 몰라. 의사 쌤이 말을 너무 잘해. 그리고 치료는 둘째치고 공감을 진짜... 마음이 되게 그랬어. 내 몸 아픈 거 나나 서럽지 누가 관심 있어 솔직히. 근데 뭔가 달라. 직이상으로 맘 써주는 낌? 이건 뭐 몇 번 가면 쌤이랑 친구 될 기세야"

" 그래서 한의원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가신다잖아"


맙소사. 순간 주책 맞게 눈가가 시큰해졌다. 


그게 그런 거일 줄이야.

나는 그저 어르신들이니 침 맞고 뜸 뜨시는 게 더 좋고 편하셔서 그런가 보다 했거늘. 생각지 못 한 말에 마음이 저릿해졌고, 니가 미쳤구나라는 친구의 말이 들온 건 이미 눈물떨어진 후인걸 어쩌겠는가. 계속 우는 수 밖에. 


부연설명 같은 건 없어도 됐다. 치료도 치료지만 내 아픔에 공감해주고 귀 기울여주고 그런 게 더 필요하다는 게 뭔지, 그리고 그 과정 자체를 그저 즐거운 대화라고 여기며 임하는 그 마음이란 또 어떤 건지도 너무 잘 알 것 같았으니까. 


침 한 번 맞으러 갔을 뿐인 일에 나 이렇게 큰 걸 얻어도 되는 건가? 이건 뭐 내가 계산한 건 진료비가 아니라 인생 수업료였던 셈 됐으니.


그러고보니 가만, 내 옆에 그 아주머니 환자분은 어떠시려나? 모르긴 몰라도 왠지 그 분도 나만큼이나 기분 좋은 저녁을 보내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 여보, 나 무릎이 너무 멀쩡해서 내일 당장 마라톤도 문제없겠는데? 호호호 하면서 말이다.


어쩐지 그 한의원 진료기록엔 어려운 의학 용어 말고 이런 얘기들이 적혀 을 같은 건, 내 기분 탓일까?


| Date. 2021. 10. 13.

아주머니 환자: 전날 마트에서 집에 있는 인형을 또 사달라는 딸을 달래느라 장시간 쇼핑, 무릎 통증 발생하여 내원. 딸에게 다음 주에 언니랑 같이 와서  더 예쁜 걸 사주겠다고 약속했으며, 잘 까먹는 딸이 깜빡해주길 기대하고 있음
손 모아 환자: 일자목 통증으로 내원. 스트레칭 알려주고 꾸준히 하라 하였으나 대답에서 의지가 전혀 엿보이지 않음. 침은 계속 맞아도 나쁜 건 아니냐고 묻는 걸로 보아 스트레칭은 안 하고 계속  내원할 것으로 예상. 추후 침술을 줄여가면서, 환자 본인이  스트레칭으로 통증을 경감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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