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서 첫사랑과 재회하다

(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6

by 하기

6.


100여 명이 모인 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의 생각 중에 공통된 부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 새로운 대표에게 뇌물을 먹고 무리하게 업무처리를 해준 것 아니야.”


“좀 더 강하게 어필해야 우리 편인 전 대표가 힘을 받을 거야.”


입주자들의 마음을 읽으면서 나는 담당자로서 입주자들에게 발언을 하였다.


“선생님들의 요구사항에 대하여 충분히 인지했습니다. 담당자로서 선생님들의 고충이 법과 원칙에 의하여 정당하게 검토될 수 있도록 약속드립니다.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법과 원칙의 편에 서서 이 문제를 처리할 테니 선생님들은 오늘 일단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업무의 해결을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저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선생님들의 대표자에게 반드시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마음속에 갖고 있는 불안과 불만을 위로해주고 절차에 대한 안내를 하자 민원인들의 표정에 나에 대한 신뢰가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담당자님을 믿고 오늘은 철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고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오늘과 같은 농성이 반복될 수 있으니 담당자분은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주십시오.”


민원인들은 나에게 다시 한번 당부를 하고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집단민원을 무리 없이 해결하고 사무실에 들어오자 박균성 과장과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나의 노고를 치하해주었다.


“현기 씨 오자마자 실력을 보여주네. 역시 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어. 오늘 수고했네.”박균성 과장은 안색이 정상적으로 돌아와서 나를 칭찬하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업무를 인수해주자마자 큰일이 생겨서 걱정했는데... 현기 씨 미안하고 고마워요. 그리고 든든하네요 후후.”전임자인 조연수 조사관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현기 씨 오늘 회식해줄까? 고생했는데.”


“과장님 아닙니다. 담에 해요. 오늘 선약이 있어서.”


“현기 씨 인기남이라니까요.”


조연수 조사관의 농담에 “아니요. 학교 동창모임이 예정되어있어서.”하며 나는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였다. 사실 동창모임은 잘 안 나가는 편인데 며칠 전 대학 동기회장으로부터 백진희가 유학에서 돌아와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고 모임에 나가려는 생각이 들었다. 진희는 대학시절에 나와 사귀었던 옛 연인이었다.


진희와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친해진 과커플이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나는 교직을 부전공으로 선택해 중등교사 시험을 준비하던 진희와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며 친해졌다. 우리는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하며 식사도 같이 하였다. 식사 후에는 도서관 뒤에 있는 동산을 산책하며 차를 한잔 마시는 것으로 연애를 대신하였다. 동산에 있던 벤치는 우리의 첫 키스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추억의 공간이었다.


교사 시험에 합격한 진희가 바빠지면서 우리의 사이는 소원해졌고 행시에 계속 불합격한 내가 자격지심에 연락을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 그 후 나는 공채시험을 통하여 하위직으로 국세청에 입사하였고 바쁜 생활 속에 그녀와의 추억은 내 가슴에 못다 푼 매듭처럼 아련하게 남아 있었다.


홈커밍데이로 기획된 이번 동창회는 선배들이 후배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사회생활에 대해서 조언해주는 자리를 가지는 시간에서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 위주로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며 후배들에게 잘난 척을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자리를 피했을 나였지만 오늘은 자신감을 가지고 나의 직장생활에 대하여 얘기하였다. 최근에 집단민원을 어렵게 해결한 사례를 얘기해주자 여기저기서 “저 선배 하위직 공무원이지만 자신감은 대단한 걸. 존경스러운데.”하는 후배들의 마음이 들려왔다.


단상에서 슬쩍 진희를 바라보자 “현기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네. 멋있어졌어.”하는 진희의 속마음이 들려왔다. 나는 발표를 끝내고 진희가 있는 자리로 가서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하며 반가운 마음을 드러내었다.


2차로 간 호프집에서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며 진희는 “현기야 이번에 교내에서 학생들에게 직업체험 프로그램으로 공무원을 초빙하는 행사가 있는데 네가 와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부탁하는데 들어줄 거지?”하며 생긋 웃었다. 그 미소에 나는 “그럼. 누구 부탁인데 들어줘야지.”하여 자연스럽게 진희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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