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5
5.
민원봉사실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민원인들의 마음이 읽히자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어 불친절 공무원의 딱지를 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친절공무원으로 소문이 나서 납세자의 날에 친절공무원상을 받을 정도였다. 민원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은 전화상에서도 효력이 있었다. 나는 귀로는 민원인의 전화 내용을 들으며 마음속으로는 민원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왜 관할 세무서에서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는데 소득금액 증명원이 발급되지 않는다는 거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안 해주는 것 아닌가요?”라고 민원인은 말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젊은 놈이 공무원이라고 까부는데 어디 한번 당해봐라.”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읽고 나는 흥분하지 않고 “제가 해드리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신고서가 아직 전산 입력되지 않아서 그러니 불편하시더라도 민원인이 관할 세무서 소득세과에 방문하셔서 담당자에게 확인을 받으시면 수동발급이 가능하니 신분증을 가지고 방문해주세요. 제가 담당자에게 미리 연락을 드릴 테니 꼭 방문 전에 연락을 주십시오. 신고서 전산입력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제가 국세청을 대표하여 사과드리고 현재로서 제가 선생님을 도와드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민원인은 나의 이런 반응에 특별한 잘못을 발견해내지 못하고 수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대다수의 경우였다. 이런 나의 전화 내용을 뒤에서 듣고 있던 박균성 납세자보호과장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최현기 씨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을 보니 납세자보호실 고충 담당이 맞을 것 같아. 내일부터 민원실 말고 납세자보호실로 자리를 옮기게. 내가 서장님한테 미리 양해를 구했으니 내일자로 발령이 날 거야.”과장님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결국 나는 친절공무원상을 받으며 민원이 드세기로 유명한 구리 세무서 납세자보호실의 고충 담당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다.
나는 다음날 민원봉사실의 짐을 옮겨 납세자보호실로 갔다. 같은 사무실 안쪽에 위치한 납세자보호실은 민원인으로 항상 바글바글한 민원봉사실과 달리 별도의 출입문이 마련되어 있고 직원들도 5명밖에 안돼 조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는 모습이었고 고충 담당관인 나에게 주어진 일은 끝없이 이어지는 고충민원으로 겉으로는 조용해도 결코 속까지 조용해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고충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대표자 변경과 관련한 고충민원이었다.
“최조사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건 인수인계받았지?”
“네, 전임인 조연수 조사관에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이 그렇게 세무서를 시끄럽게 했다고 조연수 조사관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어려운 일 떠 맡겨서 미안하다고...”
“그래, 어려운 일이지. 어렵기 때문에 내가 친절공무원인 자네를 민원실에서 스카우트해 온 것이 아닌가. 내일 고충민원을 낸 전 대표가 오기로 되어 있으니 오늘 야근이라도 해서 관련된 규정 및 그동안의 진행상황을 숙지해 둬야 내일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을 거야. 알았지?” 박균성 과장은 나에게 걱정스러운 듯 말하였다.
“알았습니다. 오늘 야근하면서 준비해 놓을게요.”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전 대표 한 명 정도는 마음을 읽으면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나를 찾아온 사람들은 전 대표 한 사람이 아니라 100명이 넘는 집단민원인이었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아침부터 세무서 주차장을 점령하고 확성기로 고성을 질러댔다.
“주민동의 없이 입주자 대표를 변경해 준 구리 세무서장은 책임지고 사퇴하라!”출근하면서 이 모습을 본 박균성 과장의 얼굴이 샛노래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