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의 딸을 통하여 원한을 풀어주다

(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12

by 하기

12.


황수정의 딸인 강경아가 나에게 전한 사실은 놀라웠다. 황수정은 평생 중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퇴직하였다. 본인의 퇴직금과 먼저 사망한 남편과 함께 같이 선생님을 하면서 저축한 돈으로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을 위하여 신촌에 오피스텔 빌딩을 매입하여 임대료 수입을 올리려고 하였다. 하지만 매도를 한 전 양도인이 국세 체납자의 딸로 말소된 가등기를 이용하여 불법적으로 체납자인 모친으로부터 오피스텔의 소유권을 이전받아 이 사정을 잘 모르는 황수정에게 매매를 한 것이다. 황수정으로서는 등기부등본에 정상적인 소유자로 나와 있는 전 소유자를 믿고 빌딩을 인수한 것인데 나중에 국세청에서 빌딩을 가압류하고 소유권 이전 무효소송을 제기하여 해당 빌딩이 다시 체납자 명의로 소유권 이전이 되는 판결이 1심과 2심에서 확정되고 대법원에 상고 중인 상태였다.


“어머니는 소송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선처를 요청하였지만 법 논리를 앞세운 국세청의 입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많은 곤란을 겪으셨습니다.”강경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래도 이 문제로 자살까지 하셨다니 너무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것이 너무 안타깝네요.”


“단순히 재산 문제로 끝났으면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으셨을 거예요.”


“소송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가 있었나 봐요?”


“빌딩 가압류 후에 세입자들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으셨어요. 계약취소와 손해배상금 청구소송 등을 추가로 당하시고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남편이 죽은 후 평소 우울증을 호소했던 황수정은 괴로움을 잊으려고 술을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우울증 약과 술을 같이 먹으면 일시적인 환각상태가 올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술을 마신 날 비극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강둔치공원 근처 강변에서 강물에 투신하여 익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혹시 그 장소가 구리 근처 한강둔치공원인가요?”


“네. 조사관님이 어떻게 그 장소를 아세요?” 나의 물음에 강경아는 놀란 듯 반문하였다.


“아니 사망증명서 상 사망 위치를 보고 유추해 본 거예요. 제가 그 근처 세무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대강 위치를 알거든요.” 나는 변명하듯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했다.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속인인 제가 소송 당사자가 되어 지금 대법원에 상고 중이에요.”


“그럼 대법원 판결로 모든 것이 확정되겠군요.”


“네. 저는 그러기 전에 마지막으로 조사관님의 소문을 듣고 저의 억울함과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이렇게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소문이라니 어떤 말씀인지?”


“조사관님은 진정으로 민원인의 고충을 자기 가족의 일처럼 처리하고 진심을 다하여 최선을 다한다고 아는 지인분이 소개를 시켜주셨어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서류를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모두 확인한 후 억울함이 없도록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강경아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황수정이 왜 조만간 자신을 다시 볼 것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앞에 서있는 여인은 또 하나의 황수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황수정 아니 강경아를 보내고 고민에 휩싸였다. 황수정이 물에 빠진 나를 구해주고 민원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준 것이 자기의 한을 풀어주고 딸아이를 도와달라는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전 양도인인 체납자의 딸을 조사하기로 했다. 서류를 검토하니 황수정이 전 양도자의 재산에 가압류를 걸어 전 양도자가 시행하는 부동산 개발사업이 곤란에 처한 것을 확인하고 전 양도자와 담당 변호사를 만나 입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서울의 고충위원회 분사무소로 약속 장소를 정하여 전 양도자와 변호사를 만났다. 전 양도자는 사업 곤란과 황수정의 자살로 인한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저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재산을 물려받고 양도한 것인데 국세청이 나한테까지 책임을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죠. 가압류된 재산을 압류 해제하여 준다면 어느 정도 세금을 납부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 양도자의 입장을 확인하고 근처에 있는 서울지방국세청 사무실을 방문하여 추적팀 체납담당자의 주장을 들어보았다. 체납담당자는 황수정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지만 체납자의 세금이 완납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공무원인 본인이 민원인의 일방적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황수정의 빌딩을 공매하는 경우 국가가 받을 수 있는 세금이 어느 정도인가요?”


“사실 소액 임차보증금을 제외하고 국세보다 우선한 은행 채권 등을 제외하면 국가가 공매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최대한 금액은 10 억 정도 될 것입니다.”국세청 담당자는 재산 감정평가서를 보이며 나에게 설명하였다.


“그럼 전 양도인이 10억 정도의 세금을 납부하고 서로 소 취하를 하고 가압류를 해제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재판부가 화해권고를 통하여 그런 결정을 내려준다면 불가능한 결론은 아닙니다.”


담당자의 반응을 통하여 고충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나는 가압류 취소 소송을 통하여 양당사자가 화해권고를 수용하면 재판부가 상고 취하를 통하여 소송을 종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세청 소송 전담 변호사로부터 확인하고 강경아의 변호사를 통하여 업무를 진행하여 전 양도인이 10억의 체납세금을 납부하고 강경아는 대법원의 상고를 취하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국세청이 황수정의 오피스텔에 걸어 놓은 가압류를 해제함으로써 관련 민원을 모두 마무리하였다. 강경아는 나에게 찾아와 감사함을 전하였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저보다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함을 전하세요. 그분이 없었다면 이 문제가 이렇게 쉽게 해결될 수 없었을 거예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거죠?” 강경아는 나의 말에 놀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어머니가 이승에 있는 따님이 걱정되어 도와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일반적인 생각을 말씀드린 거예요.”


“하긴 그렇긴 해요. 어머니도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쉬실 수 있으실 거예요. 이 모든 것이 최현기 조사관님의 친절하고 열정적인 업무처리 때문입니다.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저는 이미 모두 보상받았습니다. 어머니 생각해서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사세요.”


“이번 주말에 어머니가 투신하신 한강 변에서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의 주지스님을 모시고 천도제를 열 생각이에요. 이렇게라도 해 드려야 사랑하는 어머니를 억울하게 보낸 저의 한도 풀릴 것 같아요.”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강경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황수정과 나의 인연도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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