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친절 대마왕으로 등극하다

(단편소설) 친절 대마왕 - 13 최종회

by 하기

13. 결혼과 함께 친절대마왕으로 등극하다


다음 주말 토요일 저녁 나는 세종시에 있지 않고 서울로 갔다. 한강둔치공원에서 열리는 황수정의 천도제때문이었다. 직접 천도제를 볼 생각은 아니고 멀리서나마 황수정의 억울함을 풀어 준 당사자로서 그녀의 영혼에 참배하기 위해서였다.


엘란트라 승용차를 둔치공원 주차장에 세워 두고 한강변으로 나가니 내가 지난날 빠져 죽으려고 했던 부근에서 천도제가 열리고 있었다. 약식으로 거행된 천도제는 주지스님의 염불과 비구니의 승무에 이어 딸인 강경아가 황수정을 위무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발문을 낭독하는 순서로 끝이 났다.


나도 멀리서나마 그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조용히 묵념하는 것으로 행사에 참가했다. 행사가 끝나자 모두 돌아가고 나는 근처 매점에서 에세 맨솔 담배 한 갑과 막걸리를 구입하여 강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막걸리 한잔을 하고 담배 한 가치를 피고 나니 속이 쓰려왔다. 한참이나 발병하지 않았던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한 느낌이었다.


주위가 어둑어둑해지고 쌀쌀한 날씨에 사람들도 거의 없어질 무렵 강변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마시던 막걸리 잔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갈색 생머리의 황수정이었다.


그녀는 걸어와서 내 옆에 앉았다. “현기 씨 놀랐죠? 마지막으로 감사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생전 모습으로 왔습니다.”


“네. 예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귀신인 줄 알고 대화하려니 무섭기도 하고 떨리네요.”


“한을 가진 물귀신은 천상으로 가지 못하고 물속에서 지내는 데 현기 씨가 내 한을 풀어주어 이제 천상으로 갈 수 있게 됐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럼 저번에 마음 상담소와 비서님은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궁금했던 일들을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그건 현기 씨만 볼 수 있는 환영을 만들어낸 거예요. 비서도 저와 같이 한을 가지고 투신한 물귀신이에요. 나의 부탁으로 저를 도와준 거죠. 지금 한강 속에 있을 거예요.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직접 구해 준 사람 외엔 보이지 않아요. 지금 나의 모습도 현기 씨 눈에만 보일 거예요.”


“그럼 제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떤 이유죠?”


“현기 씨. 최면치료 중에 저와 사랑을 나누었잖아요. 귀신과 사랑을 나누게 되면 사람의 마음을 투시할 수 있는 귀신만의 능력을 사람도 일시적으로 가지게 될 수 있어요. 한 3~4개월 정도.”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나에게 생긴 일들이 모두 이해되었다. 황수정은 나의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키스를 하였다. 그녀의 눈에 촉촉한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키스 후에 그녀는 일어나서 말없이 돌아 섰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땅이 아닌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붉은 노을 아래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 그녀의 겨드랑이에서 하얀 깃털이 자라났다. 점점 커진 깃털은 날개가 되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 활짝 웃더니 빠른 속도로 날기 시작했다.


진희가 세종시의 세종중학교로 전근 오고 3개월이 지나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내가 세종시에 있는 공무원아파트를 신청한 것이 당첨되어 신혼집을 분양받게 된 것이 결혼을 빨리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오재 위원장이 주례를 보고 먼저 결혼식을 올린 규진과 영미의 소개로 용산의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진희의 학교 동료, 나의 국세청 동료들과 고충위원회 동료들로 결혼식은 성대하게 올려졌다.


호주에서 꿈같은 10일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뜻밖의 결혼선물이 주어졌다. 고충위원회 조사관들의 민원을 접한 민원인들을 상대로 가장 친절한 조사관을 선발하는 국민 온라인 투표가 실시되어 제1대 친절 대마왕에 내가 선정된 것이다. 별도의 사무실과 비서가 배치되고 시상식에서 나는 친절 대마왕 고충 담당관 최현기라는 명패를 수여받았다.


친절 대마왕이 되고 첫 출근 날 나는 진희가 요리해 준 된장국과 김치부침개를 먹고 출근하였다. 출근을 하여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서류를 검토 중이었다. 비서가 인터폰으로 민원인이 방문하였다고 연락을 했다. 나는 들어오시라고 말하고 민원 접대용 소파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최현기 조사관님.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네, 일단 소파에 앉으십시오.”


나는 들어온 여자 민원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 상담소에서 비서를 하던 여직원과 거의 똑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저의 어머니가 너무나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고충은 서류에 자세히 적어 놨습니다. 저번에 강경아 씨 고충이랑 비슷한 사안인데 조사관님이 가족의 일처럼 진심을 다하여 해결해주셨다고 해서요. 저도 고충을 신청하니 검토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서류를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억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여 처리하겠습니다.”


민원인을 돌려보내고 책상으로 돌아와 나는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오전의 햇살이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와 책상 앞에 놓인 “친절 대마왕”명패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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