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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기 Sep 16. 2023

동창회

동창회 / 하기


동창회장의 긴급호출에

시청앞 고깃집에서

입학 30주년 기념으로 모인 동창들


학과실에서 통기타를 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던

헌국이는 동창회장이 되어

학교발전기금 납부를 독려하고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밤새 소주를 마시던 주호는

소주회사의 이사가 되어

명함을 돌리고 있네


축제에서 클래식 기타연주로

여학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엘비스 닮은 형석이는

보험회사 지점장이 되어

여직원들의 마음을 울리고


만화방에서 밤새 무협지를 읽으며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로 노가다를 하던 준규는

화장품대리점을 하며 여성색조화장에 대해 떠들고 있네


문학회에서 글은 안 쓰고

막걸리를 마시며 화염병을 만들던 재호는

자기 책을 내고 작가가 되어 책 홍보를 하고 있지


항상 캠퍼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영원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던 나는

동창회에서도 자리를 못잡고

이 자리 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소설을 써서 세상을 향해

마지막 어퍼컷을 날릴 거라며

큰 소리를 치고 있네


고깃집을 나와 2차로 호프한잔을 하고

남은 몇 명이 간 당구장에서

게임비 내기 당구가 끝나면

지하철이 끊길 시간


익숙하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시청앞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족이 있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30년 전 스무살의 어느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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