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자경의 진실
주인공 소개 :
나 조사관 : 세무서 재산세과 조사팀 소속. 날카로운 직감과 꼼꼼한 현지 조사 능력을 갖춘 베테랑.
윤정희 여사 : 신도시 개발로 농지가 수용되어 거액의 양도차익을 얻었으나,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으려는 부유한 전업주부.
하얀 손과 3억 원의 유혹
2024년 여름, 재산세과 조사팀 사무실에 한 여인이 들어섰다. 그녀는 윤정희 여사. 하얀색 고급 원피스에 잘 관리된 긴 생머리, 그리고 햇볕 한 줌 허락하지 않은 듯 유난히 하얀 피부와 손을 가졌다.
“조사관님, 저는 농사를 8년 이상 직접 지었습니다. 이번에 신도시 개발로 땅이 수용되면서 양도소득세 신고를 하려는데, 8년 자경 감면 혜택을 받으려 합니다. 3억 원이 넘는 세금이라던데, 감면받을 수 있겠죠?”
윤 여사는 너무나도 당당하고 차분했다. 8년 자경 감면은 농부가 농업용 토지를 직접 경작(자경)한 경우 양도소득세를 대폭 감면(최대 3억 원)해주는 강력한 절세 혜택이다. 그녀의 서류는 완벽했다. 농지원부, 영농 사실확인서 등 형식적 요건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나 조사관은 서류를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그녀의 손에 머물렀다. 농사꾼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섬세하고 깨끗했다. 햇볕에 그을린 흔적이나 거친 노동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8년 동안 뙤약볕 아래서 흙을 만진 사람의 손이 저렇게 하얗다고?’
나 조사관의 직감이 경고음을 울렸다. 3억 원의 세금을 면제받기 위한 ‘하얀 거짓말’의 냄새가 났다.
흙 속에서 드러난 진실
나 조사관은 곧바로 윤 여사의 농지가 있던 현장, 아직 수용이 마무리되지 않은 경기도 외곽의 논밭으로 향했다. '자경 여부'는 서류가 아닌 '사실'로 입증되어야 했다.
현지 조사는 꼼꼼하게 진행되었다. 나 조사관은 주변에서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있는 이웃 주민들을 찾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논밭 주인이신 윤정희 씨, 지난 8년간 농사를 직접 지으신 걸로 아는데요."
나이 지긋한 한 주민이 콧방귀를 뀌었다. "윤정희? 그 사모님 말인가? 그분은 일 년에 한두 번 차 타고 와서 잠깐 서성이다 가는 거 말고는 본 적이 없어. 농사는 늘 윤 씨 오빠가 지었지."
다른 주민도 거들었다. "맞아. 그분 남편이 대기업 임원이라면서? 여기 마을 사람들은 다 알지. 실제 전업농은 그녀의 오빠, 윤 씨 아들이었어. 오빠가 자기 논밭에다가 동생 명의의 논밭까지 도맡아 경작해 준 거지. 윤 여사는 강남에서 살림만 하는 전업주부야."
주민들의 진술은 일치했다. 게다가 그들은 윤 여사가 농사를 짓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사실확인서'까지 흔쾌히 작성해 주었다. 나 조사관은 윤 여사가 세금 감면을 위해 '명의 자경'을 시도했음을 확신했다.
무고와 악전고투
현지 조사를 마친 나 조사관은 윤 여사를 세무서로 다시 소환했다. 주민들의 사실확인서와 농작업 내역 등을 제시하며 8년 자경 감면 불인정 통보를 내렸다. 3억 원이 넘는 양도소득세가 추징된다는 통보였다.
평정을 유지하던 윤 여사의 하얀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그 주민들의 확인서, 전부 위조입니다! 제가 그들에게 돈을 주고 뇌물을 제공한 것처럼 꾸며서 저를 모함하고 있어요! 당신들이 제게 직권을 남용한 겁니다!"
윤 여사는 적반하장 격으로 나 조사관과 이웃 주민들을 검찰에 '허위 사실 유포' 및 '직권 남용'으로 무고했다.
조사팀은 난처해졌다. 정당한 세금 추징 업무가 느닷없이 수사와 법적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나 조사관은 억울했지만, 자신이 확보한 증거와 진실을 믿었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주민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에필로그 : 법정에서 확정된 진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윤 여사는 끝까지 자신의 자경 사실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웃 주민들의 일관된 증언과 나 조사관 조사팀이 확보한 각종 금융 및 생활 기록을 근거로 판단했다.
"원고(윤정희)는 피고(세무서)가 제출한 자료와 이웃 주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볼 때, 해당 농지를 8년 이상 직접 경작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경작은 오빠인 윤○○ 씨가 전담했으며, 이는 조세 회피를 위한 명의 자경 행위로 판단된다."
법원에서 최종 패소 판결이 내려지자, 윤 여사는 결국 3억 원이 넘는 양도소득세와 가산세까지 모두 납부하게 되었다.
나 조사관은 판결문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얀 손을 숨기며 흙을 만진 척했던 여인의 탐욕. 그리고 그 탐욕을 지키기 위해 무고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녀의 위선.
‘세금은 정직해야 한다.’
나 조사관은 다시 책상에 앉아 다음 서류를 펼쳤다. 하얀 손에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고, 성실 납세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재산세과 조사팀의 몫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