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 한 달 살이 하면서 마지막 12월 3일에 목표 달성했건만 다시 욕망이 꿈틀거렸다.
마침 읽고 있는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송길영 저)의 서문에서도 '욕망하고 원하는 것을 시도하라'라고 부추긴다.
마라톤은 운동 삼아하고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자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고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자고 다독이고 있었던 터였다.
수강생 중에 마라톤 명인(풀 마라톤 122회) 님이 단톡방에 들어오셨고 나처럼 5km, 10km를 운동 삼아 뛰는 진미님과 셋이 온라인상에 만나면서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셋만 모이면 일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운동 삼아 혼자 뛴다고 몇 차례 거부하다가 뛰어보자는 생각에 일요일에 도전하게 되었다.
10km는 공식, 비공식 10여 차례 뛰었지만 아직도 힘들다.
그런데 21km 하프라니 아직 꿈꾸고 있지는 않았다.
뛰기 전날에는 조금 걱정도 되고 '뛰다 못 뛰면 걸어서 가지 뭐'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신도림 공원 주변 하프 마라톤 도전
토요일 날씨가 영하로 내려가고 눈까지 쌓였다. 뛰던 km는 괜찮지만 처음 도전한 하프에서 눈은 그다지 반가운 손님은 결코 아니다.
마라톤 명인님은 눈이 와도, 추워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시면서 무조건 한다고 하신다. 마라톤 명인답다.
평상시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독서를 하고 어제 못다 한 영어 낭독 과제도 하고 나서 준비를 했다.
아무리 영하라지만 뛰다 보면 덥기 때문에 두껍게 옷을 입을 수는 없다. 12월 3일 함안에서 뛸 때도 레깅스 반바지와 얇은 목티 위에 반팔 티셔츠를 입으니 딱 좋았다. 서울 신도림에서 뛰긴 하지만 경험상 덥게 입을 필요는 없었다.
10km 뛰기 전에는 물 2컵만 마신다. 밥이나 간식을 먹으면 더부룩해서 뛰기가 불편하고 자꾸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된다. 1시간 30분 뛰고 나서 먹는 밥은 꿀맛이다.
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에서 만나서 등록을 하고 신도림 공원사랑 마라톤에서 뛰기 시작했다.
눈 위가 미끄러울 줄 알았는데 이미 사람들이 다져놓아서 뛸만했다.
이런 눈 위에서 하프를 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분은 나쁘지 않고 들떠 있었다. 거기에 진미님과 마라톤 명인과 같이 뛰다니...
모두 온라인상에서 만난 분들이다.
코로나가 연결해 준 게 되는 건가. 코로나가 없었다면 만날 수도 없었던 인연들이다.
눈 위는 힘들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2km 후에는 고가도로 아래라서 눈이 전혀 없어서 괜찮았다. 평상시에는 핸드폰을 허리색 주머니에 넣고 앱에서 들리는 km와 시간을 듣고 달리는데 이날은 마라톤 명인님께서 핸드폰을 갖고 뛰셔서 사진도 찍어주시고 시간과 거리도 알려주신다.
두 분이 워낙 스피드 있게 뛰셔서 좇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km당 8분 대가 많은데 두 분은 7분 10초 내로 달리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지만 나의 속도에 따라 달릴 수가 없었다. 그것도 두 분이 많이 나에게 맞춰주며 뛴 거다. 따라가자고 뛰어도 한 발자국씩 자꾸 처진다.
먼저 가라고 했는데도 그러려고 같이 뛴 게 아니라며 굳이 셋이 같이 달린다.
이런 달리기 불편하다.
내 속도에 내 페이스에 맞춰 달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따라가자니 벅차고 다양한 마음의 소리가 윙윙댔다.
나는 왜 달리기를 하는 걸까?
매번 뛸 때마다 생각한다.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달리기를 한다. 어느 날 서점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를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소설가에게는 재능 이외에 집중력과 지속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속력 있게 하루 3~4시간을 쓰거나, 장편 소설을 쓸 때 체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도 이렇게 운동(달리기)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시킨다'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라고 하루키는 말한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 달리기에 애정을 갖게 되었다. 나야말로 체력을 키워야 하고 늦게 시작한 만큼 글을 오래 쓰려면 달리기는 필수다. 자주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곤 한다.
10Km를 1시간 8분에 뛰다니~
내 기록은 1시간 23분인데 단축해도 너~무 단축되었다. 고수들과 달리니 그냥 고수 수준이 되어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11~15Km에 고비가 왔다. 슬슬 오른쪽 고관절이 아프기 시작했고 속도도 느려지기 시작했고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속도를 늦추지는 않는 두 마라토너다. 진미님은 에너지가 아직도 80%가 남았다며 목소리가 쌩쌩하다. 나는 말을 시켜도 말을 할 수가 없다.
특히 터널 같은 곳을 지날 때는 " 아~ " 하고 함성을 지르라고 하는데 나는 소리 지를 힘 1%도 남지 않았는데 진미님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며 계속 소리를 지른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는 걸까. 이 두 분 따라갈 수 있을까?
이제부터 오만 가지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그만둘까? 걸어갈까? 포기할까?
아냐, 그냥 가보자, 여기서 멈출 수는 없지, 힘들다!
아주 낮은 오르막만 있어도 오른쪽 고관절은 아프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고, 뛰는 게 아니라 오른쪽 발을 얹는 기분이다. 와~ 이거 장난 아니구나. 내가 하프 마라톤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조금씩 단계를 올려야 하는데 너무 한꺼번에 단계를 올린 거야. 혼자 연습했다면 12,14, 16Km 이렇게 2km씩 단계적으로 했을 텐데 이건 무리였었어. 무슨 자신감으로 한 거지?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오직 호흡에 집중하자. 나의 장점인 호흡을 하자.
1초 들이마시고 2초를 내뱉는다. 요가하면서도 호흡으로 몸의 균형을 잡고, 아이를 세 명 낳을 때도 모두 라마즈 호흡법을 책으로 배운 덕분에 힘들고 통증이 있었지만 그나마 무사히 자연분만이 가능했던 것 같다. 호흡을 하면서 1~2km를 달렸고 오른쪽 고관절은 이제 어쩔 수 없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내팽개져 버렸다. 방법도 없다.
초반 2km 지점에 간식 테이블이 있었는데 간식이 떨어져서 귤과 물만 마셨다. 그때 간식을 먹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허기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찰밥을 먹어야 허기지지 않는다고 마라톤 명인님이 알려주셨는데도 10Km 달렸던 것만 생각하고 먹지 않았더니 힘이 든 거다. 중간에 바나나를 먹던가 초콜릿 바를 먹던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담아듣지도 않았다. 하프는 안 뛰어봤으니 모를 수밖에.
돌아오는 18Km에 간식 테이블이 얼마나 반가웠던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간식이 거의 떨어져 간다. 초코파이가 1/4밖에 먹을 수 없었다. 얼마나 달게 먹었는지 모른다. 더 먹고 싶었는데 너무도 아쉬웠다. 간에 기별도 안 갔다. 귤 몇 조각과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달렸다.
나와 반대로 에너지가 솟았던 진미님은 자꾸 뒤처진다. 상황이 역전이 된 것이다. 내가 힘들었을 때 보조를 맞추어 주셨듯이 나도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달린다. 누군가 옆에서 보조를 맞춰주고 있다는 것이 안도감도 들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했다. 같이 달리는 마라톤의 묘미가 이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라톤 명인님은 둘의 컨디션이 바뀌었다며 내가 다시 살아났다고 허허 웃으신다.
마라톤 명인님은 마라톤은 위해 태어난 여자들 같다면서 우리를 응원해 주신다. 대부분 응원이 되었지만 힘들 때는 무슨 말씀을 하셔도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2Km는 눈길이다. 이미 체력은 바닥인데 어쩌나.
어쩔 도리가 없다. 이제 돌아갈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초반에 눈 위를 달릴 때와는 달리 지금은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질질 끌고 가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눈이 녹기 시작해서 질퍽한 곳에는 물기가 있어서 운동화 앞부분이 젖고 말았다. 양말도 젖었다. 운동화가 가볍고 뛰기는 좋지만 비가 올 때는 가벼운 천이라서 젖는다는 단점이 있다. 발이 축축하니 더 힘들다. 조금 전부터는 왼쪽 새끼발가락이 따갑다. 피가 나거나, 물집이 잡혔을 때 아픈 현상이다. 어깨도 뻐근하고 아프기 시작했다.
마지막 1Km가 참 멀다.
눈 위만 아니었더라도 좋았을 텐데 속으로 말하면서 겨우 달린다.
힘들 때 쓰는 방법을 써본다.
한 발자국씩만 가자는 생각에서 "오른발, 왼 발 "만 반복해서 되뇐다. 힘들 때는 한발 내딛는 것만 생각하고 달릴 수밖에 없다. 이게 힘들 때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한 발씩이 모이면 1Km가 되는 거니까.
드디어 하프 마라톤 완주다. 셋이 함께 하니 가능한 일이었다.
반환점을 더 가는 바람에 21Km인데 22Km를 달렸다.
2시간 49분이다.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에 다리에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걸을 때마다 욱신욱신 아프다. 계단에 앉고 싶은데 앉을 수가 없다. 양말은 젖어 그 축축함이 너무 싫어졌다. 빨리 갈아 신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
계단을 올라가는 데 혼자 올라갈 수가 없다. 진미님도 마찬가지다.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면서 계단을 올라간다. 세상에~ 이렇게 다리가 아플 수가~ 10Km와는 통증도 차원이 다르구나. NO PAIN, N0 G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