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소설에 이어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보다는 이해하기가 조금은 쉬운 소설이었지만 배경은 아주 무겁습니다.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1부 새
2부 밤
3부 불꽃
1부는 '새', 2부'' 밤', 3부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주 의미가 있는 제목입니다. 1부는 인선이 오랜만에 경하에게 전하를 걸어 병원에 신분증을 가지고 와달라고 합니다.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하면서 경하가 나섭니다. 인선은 제주에 살고 있는데 손가락을 다쳐서 서울에 와 있는 상황이었죠.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했는데 3분마다 바늘로 찔러서 혈액이 응고되지 않도록 해야 한답니다. 절단도 아픈데 3분마다 바늘로 찌르다니요. 극한의 고통입니다. 이 사건은 실제 친구의 손가락 사고의 이야기를 가져왔다고 하더군요. 아픈 스토리라고 1부에서 미리 암시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어이없게도 경하는 당장 제주도 본인 집에 가서 새에게 먹이를 주라고 부탁합니다. 경황없이 집을 비워 삼일 째라서 새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요.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때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지.
전류 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도 하는지.
- 135 p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가지만 눈이 많이 쌓여서 버스만 겨우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제주도는 따뜻해서 눈이 올까? 하고 자주 묻는데요, 중산간 지역은 많이 옵니다. 1~2회 온 기억만으로 버스를 타고 걷고 눈 오는 지역을 헤매면서 겨우 집을 찾습니다. 여기에서 눈에서 헤매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요, 작가도 직접 손에 눈을 맞아보기도 하고, 눈 오는 날 산에 가서 직접 밟아보기도 했답니다.
표현들이 아주 리얼해서 저도 눈보라를 헤치고 같이 동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경하도, 인선도 모두 겉과 속 모두 아파 보였습니다. 상실인지, 삶에 대한 고단함인지 모를 내적 아픔이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2부 ' 밤'은 아무도 없는 지역에 전기도, 물도 끊긴 와중에 겨우 도착했건만 새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없는 죽음에 대한 표현들을 하는데 살아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죽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읽는 저도 삶과 죽음을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었죠. 1부가 횡으로 서울에서 제주 집까지 간 경로라면 2부는 어둠이라는 깊은 나락으로 빠지는 수직적 표현을 했다고 하더군요.
4.3사건으로 인선이 어머니와 가족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모두 총살됐어.
모두?
군경 직계가족을 제외한 모두.
*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 220p
인선이 어머니와 아버지는 직접적인 4.3사건 당사자들이었죠. 고문을 당한 아버지, 남동생을 찾으러 어머니가 다니다가 만나서 결혼했습니다. 인선이 어머니가 남동생의 흔적을 찾기 위한 여정도 계속됩니다. 관련 자료도 계속 모으고요.
처음에 엄마는 빨간 헝겊 더미가 떨어져 있는 줄 알았대. 피에 젖은 윗옷 속을 이모가 더듬어 배에 난 총알구멍을 찾아냈대. 빳빳하게 피로 뭉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은 걸 엄마가 떼어내 보니 턱 아래쪽에도 구멍이 있었대. 총알이 턱뼈의 일무를 깨고 날아간 거야. 뭉쳐진 머리카락이 지혈을 하고 있었는지 새로 선혈이 쏟아졌대.
.
.
당숙 네에서 내준 옷으로 갈아입힌 동생이 앓는 소리 없이 숨만 쉬고 있는데, 바로 곁에 누워서 엄마는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대. 피를 많이 흘렸으니까 그걸 마셔야 동생이 살 거란 생각에. 얼마 전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조금 돋은 자리에 꼭 맞게 집게손가락이 들어갔대. 그 속으로 피가 흘러들어 가는 게 좋았대. 한순간 동생이 아기처럼 손가락을 빨았는데. 숨을 못 쉴 만큼 행복했대.
- 251p
남동생에 대한 인선 어머니의 기억은 평생 또렷이 기억한 것 같습니다. 인선 어머니가 치매를 앓던 시절에는 인선 입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서 마치 동생에게 피를 먹이게 한 것처럼 하기도 했죠.
3부는 '불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 325p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 글에서 희망이 보이네요.
그러나 제가 읽은 느낌으로는 암울하기만 하더군요.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다.
- 320p
한강 작가는 나무나 눈에 대한 이미지를 많이 사용합니다. 다른 소설 '채식주의자'에서도 나무가 되고 싶은 영혜의 이야기를 하고, 이 소설 1부에서는 눈을 등장시켜 삶과 죽음의 사이에 눈을 넣기도 하고, 시체를 덮어버리는 눈으로 호도 표현합니다.
작가는 눈이 아름다운 것, 매혹적인 것, 결정체, 무게의 가벼움, 착움, 영혼처럼 천천히 와서 녹는다. 따듯하면 죽는다, 모든 걸 덮는 눈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설명하더군요.
작가는 이 책을 '지극한 사랑이기를 빈다'라고 했는데 사랑이라고 느낄 것 같아요. 거기에 일방적인 폭력에 당하는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책 속에 나오는 사투리가 저는 다 읽혔습니다. 제주가 고향인 저는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주변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 많이 있고요. 남 일 같지 않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 하나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소년이 온다'의 고문 당사자와 유족이 아직도 트라우마를 갖고 있듯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제주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세대에게까지 그 부모의 영향이 미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마치 인선처럼요. 가장이 죽고 나서, 가족이 죽고 나서 그 남은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갔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표지에 대해서도 작가가 이야기했는데요, 작가와 다른 분이 양쪽에서 잡고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제주 바다이고 천이 큰 파도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하고, 눈 같기도 합니다. 바다에 묻힌 영혼들을 위한 의식같기도 합니다.
역사적인 4.3사건을 소설로 승화하여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 지극한 사랑을 전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