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마라톤에 도전하다
10km 달리기 중 7km에 그분이 오셨다.
두 명의 자아가 희비의 쌍곡선을 그어대고 있다.
" 괜찮아, 달릴 수 있어, 10km는 많이 달려봤잖아."
" 힘든데, 너 왜 또 달리니? 달리면 밥이 나오니 국이 나오니?
고생을 사서 한다. 쯧쯧... 집에서 편히 쉬기나 하지 그랬어?"
10km를 많이 달렸다고 해서 10km가 가뿐한 건 아니다.
10km는 여전히 10km다.
2022년 하반기에 '풀 마라톤 도전'을 목표에 버젓이 쓰고 말았다.
안방 벽에 있는 드림 보드판을 매일 보고 있자니 구체적 전략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의지가 약해서 들쑥날쑥한 달리기 날짜를 규칙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마라톤클럽에 가입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마음을 먹고 집 근처 마라톤 클럽을 알아본 후 홈페이지에 가입인사를 하고 2월~12월까지 회비를 모두 이체했다. 일단 돈을 내면 끝가지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이제는 12월까지 달릴 일만 남았다.
그 첫날이 오늘이다.
총 40여 명이 있는데 수요일 주중 저녁 8시 시간이라 3명이 나오셨다.
두꺼운 패딩을 클럽 캠프에 벗어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공터에서 준비운동을 했다.
요가나 수영할 때 시작 전 준비 운동을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달리기 할 때 혼자서라도 하곤 했다.
무릎을 안팎으로 돌리는 동작과, 손을 무릎에 대고 자세를 낮춘 후 어깨를 옆으로 트는 동작은 처음이다.
역시 마라톤틀럽이라 준비운동으로 다치지 않게 몸을 푼다. 그래, 이거야.
출발~
2~3km는 신입회원이 와서 같이 천천히 뛴다고 하신다.. 몸을 풀면서 천천히 달린다.
혼자서 뛰어서인지 같이 뛰는 건 부담이다.
내 페이스가 있는데 페이스를 넘어서 같이 맞추려고 오버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신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조용히 달리고 싶은데 자꾸 말을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혼자 오랫동안 3~4년간 뛰었나 보다.
힘들기도 하고 달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뛰는 것을 좋아한다.
다행히 적절한 대화만 오가서 좋았다.
자주 뛰던 코스라 바닥에서 1km마다 표시가 되어 있다고 알려준다.
자주 달리면서도 보지 못했다.
km를 측정할 수 있어서 좋은 방법이다.
5km 까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끔씩 하면서 뛰었다.
어제 워밍업으로 5km로 달려서인지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세 분이 오히려 나에게 페이스를 맞추고 계셨다.
5km가 지나자 자유롭게 뛰자고 하셔서 한 분은 앞서 가신다.
다른 두 분도 가시면 좋겠구먼 계속 옆에서 뛴다.
무릎이 아파서 살살 뛴다고 하신다.
이 산책코스는 코로나 이전 남편과 10km 달렸고 시청에서 주최한 대회 코스라서 잘 알고 있다.
밤 8시에 이렇게 달려본 적은 없다. 밤 불빛들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역시 코스는 주변 풍경이 좋아야 한다. 힘들 때는 풍경도 아무 소용이 없지만 초반에는 기분을 좋게 한다.
7km가 되자 호흡이 달라졌다. 드디어 주위를 볼 여유가 없어졌다.
옆에서 두 분이 계셔서 힘든 내색도 못하고 꿋꿋이 달렸다.
아예 앞서 가버렸으면 좋겠는데 신입회원을 챙겨야 한다는 사명감에서인지 안 가신다.
맞아, 이래서 내가 마라톤 클럽을 싫어해.
왜 모두 다 같은 페이스로 달려야 하냐고?
8km 되자 한 분은 또 앞서가신다. 신입회원을 잘 부탁한다고 나머지 분에게 당부까지 한다.
무릎이 아파서 살살 뛰신다는 분만 따라가련다.
정말 무릎이 아프신 건지 신입회원을 위해 천천히 가는지 모르겠다.
천천히 달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따라가기가 바쁘다.
8km가 되자 더 힘들어졌다.
00 대교 2개만 건너면 목적지에 도달하겠구나 어림짐작을 해본다.
멀기만 하다.
호흡을 해본다.
가볍게 마시고 깊게 내쉰다.
20km도 뛰었는데 10km쯤이야 일도 아니지.
아니다. 일이다. 힘들다. 20km 달릴 때 18~20km는 거의 다리를 끌고 다녔다.
혼자라면 잠깐 걸어가기라도 했을 텐데 같이 달리니 꼼짝없이 달릴 수밖에 없다.
흔들림이 없는 같은 자세와 같은 페이스와 속도로 달리는 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역시 마라톤 클럽 회원이다.
9km 지점에서는 최고로 힘든 시간이 왔다.
호흡을 하면서도 자꾸 얼굴이 찡그려진다.
입술을 깨물기도 하면서 이겨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발은 계속 움직인다. 마치 물속에서 오리가 계속 발을 휘젓듯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 걸음이다.
오직 호흡에만 집중을 한다.
목적지도 생각 않고 '하나 둘, 하나 둘' 속으로 세어본다.
지금까지 달리기 경험상 하나 둘 하면 결국 도착하게 되더라.
삶도 한 발자국씩 살다보니 이렇게 살아지더라.
마지막 500m 남기고 먼저 달리신 두 분이 되돌아온다.
같이 뛰어주기 위해서다.
나는 다시 되돌아올 힘도, 여유도, 배려도 없었을 텐데...
역시 마라톤 클럽이다.
옆에서 뛰면서 하는 말에 머리가 맑아졌다.
" 아이 개운해 "
'엥? 나는 아이코 힘들다인데...'
풀 마라톤을 뛰는 분과 신입회원의 차이다.
단체로 뛰는 분과 혼자 뛴 사람의 차이다.
마지막 1km에는 비축했던 힘으로 스피드를 낸다고 한다.
오~ 새롭게 배웠다.
그러나 나는 이미 힘이 다 빠졌다.
내 페이스가 아니라 같이 뛰다보니 오버페이스를 이미 해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에는 마지막을 위해서 힘을 남겨둬야겠다.
나는 또 여기서 얼마나 성장을 할까?
풀 마라톤 목표에서 풀 마라톤 나눔을 배우지 않을까?
주황색 점퍼도 받았다!
이제 난 마라톤 클럽 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