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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달리세요?

브라보 마이 러닝스토리 1화

왜 달리세요?


햇빛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고 첫 훈련하는 날 대뜸 클럽 회원이 묻는다.

이 질문을 나한테 하는데도 아직까지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또 여기서 들어야 하네.


그러게요, 왜 달리는지 알아보려고 가입했어요.


참 성의 없게 대답했지만 나도 왜 달리는지 정말 모른다. 10년 넘게 러닝 한 분들은 아실 텐데 굳이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모든 걸 다 이유를 대면서 살아가야 하나. 그냥 하는 일도 있지.


뭔가 해소할 일을 찾기 위해서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풀코스 고통의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 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가 어지러울 때 달리기도 하고, 할 일 없을 때 달리기도 하고...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니다.


왜 달리는지는 더 달려봐야 알겠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봐도 몇 입 더 먹어봐야 맛을 알듯이.


집 근처 햇빛천에서 그 사건으로 가슴이 먹먹할 때 내달렸던 그 한 번의 러닝이 마라톤 클럽까지 가입하게 되었다.


운동화 러닝화로 신으세요, 다쳐요, 다쳐.


그냥 운동화로 달리면 되는 게 아닌가, 운동화가 운동화지, 러닝화가 따로 있어. 운동화만 있으면 되는 운동이 러닝이라고 해서 시작했건만 러닝화를 사야 한단 말이네. 러닝도 장비빨인가.


마라톤 클럽이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세 명이 와 있었다. 그것도 클럽 회장님, 훈련부장님, 남자 회원 하나.

동네 마라톤 클럽이 맞긴 하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훈련부장의 스트레칭 후 뛰기 시작한다.


몇 km 뛰실 건가요?


훈련부장이 묻는다.


몰라요, 몇 km 뛰어야 하나요?


10분 정도 핸드폰을 들고뛰어본 나로서는 km 거리 개념이 없다. 아, 남자들은 숫자로 꼭 거리를 표현하더라. 저기 00 병원 근처까지 갔다 온다고 하면 딱 알아듣겠구먼. 5km는 대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 역시 남자들과 여자들은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야. 칫.


뛸 수 있을 때까지만 뛰고 걸을게요. 저 잘 못 달려요. 10분 이상 달린 적이 없어요.


아, 알겠어요. 어느 정도인지.


훈련부장님은 알겠다고 하며 옆에서 뛴다. 뭘 알겠다는 건지. 먼저 가라고, 내가 훈련부장님 스피드를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하하, 스피드, 제가 맞춰드립니다.


아, 그런 건가. 내가 맞춰드릴 능력은 아니지...


천천히 뛰면서도 세 명의 수다는 3km까지 계속되었다. 뛰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새로이 알았다. 지난달은 300km를 뛰었는데 이번 달은 200km도 바빠서 못 뛰었다느니, 2개월 후 마라톤 대회 풀코스 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둥 생소한 수다를 떤다. 남자들도 이렇게 말이 많아? 남편은 시키지 않은 말 절대 먼저 하지 않는 과묵형 인간이다. 그래도 같이 사는 이유는 딱 하나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지루한 호구조사를 시작한다.

남편은? 아이는? 직업은?


아니 초면에 이런 질문을 해야 하나? 답해야 하나? 힘들게 뛰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곤 전혀 개의치 않은 듯 대답하기 싫은 질문만 해댄다. 답하고 싶지 않다. 친한 사람들도 조심스레 하는 질문들을 이렇게 예의 없게 막 던지다니.


그러게요, 네, 아니요로만 답했더니 질문이 끊겼다. 다행이다.


마라톤 클럽에 와서 느낀 나의 감정은 낯섦과 어색함이다. 낯을 무척 가리는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내가 있을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성 회원들도 하나도 없고, 대화의 주제도 모르는 용어 투성이다. 사람들과 섞이기 싫고 인간관계가 싫어서 망설이고 망설였던 가입이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서는 Talking과 Silence를 선택할 수 있다. 머리스타일을 말한 후 나는 항상 Silence를 선택한다. 머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Talking이라고 말하면 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으면 Silence를 말한다. 나의 집안 사정과 나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머리만 하고 깔끔하게 나서고 싶다. 말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쓸 에너지도 없다. 되새겨서 꺼내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Talking과 Silence를 선택할 수 없는 마라톤 클럽이 아쉬운 날이다. 이래서 유료와 무료 서비스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거야.


제대로 오긴 왔나, 여차하면 회비 내라고 하기 전에 관두지 뭐. 따뜻한 느낌이라고는 하나도 없네, 읎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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