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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와 함께 달리다(20km 달리기)

풀 마라톤 도전하다



달리면서 바라본 안양천

가벼운 보슬비


보슬비가 내리는 일요일이지만 비를 맞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비가 가볍습니다. 비가 오다 말다 하기도 하고 달리는 동안 내리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았죠.


아침 09시에 나섰는데 저녁처럼 어둡습니다.

길 건너에는 회색 하늘이지만 안양천 물빛에 비치는 물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운치가 있습니다.


'타이탄의 도구들' 책을 읽다가 비 오는데 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멜리아는 비가 오고 추운 날에 달리기 연습하는 걸 좋아한다. 자신의 경쟁자들은 그런 날씨에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지 않다. 단 누구보다 역경은 잘 견딘다

-타이탄의 도구들 291p-


'운동해주3 프로젝트'(주 3일 자유 운동하고 인증하기)를 같이 하는 분에게 오늘 각자 집 근처에서 러닝 하자고 톡을 보냈다가 비가 오는 것을 보고는 취소했어요. 이 문장을 읽자마자 다시 러닝 하러 간다고 보내면서 문장 하나에 마음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달리든가 달리지 않든가 하는 건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마음의 문제이니까요.


한강 향해 20km 달리기


비가 오는 날은 습도가 많아서인지 호흡하기가 맑은 날보다 편해서 좋습니다. 사람도 드물어서 좋기도 하고 아주 조용해서 더욱 좋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잔디 위 맨발 걷기를 좋아합니다. 겨울에는 발이 시리지만 이제 조금만 지나면 비 올 때마다 잔디밭 위를 걷고 있겠죠.


풀 마라톤이 42.195km이니 half는 21.0975km인데 22km로 핸드폰으로 삼성 헬스 앱을 켜고 달리기 시작했죠.


한강까지 편도가 10km 되기 때문에 한강 물을 보고 오리라고 생각하고 달리기 시작했고 '한강'이라는 도로 위의 글만 봐도 가슴이 뛰더군요.

22km 하프 공식 기록증은 2시간 55분으로 단 1회밖에 달리지 않아서 부담은 있지만 도전해 봅니다. 두 번째 20km 달리기가 되겠군요.


도로가 중간중간 한강물이 되다


이런~

비가 오는 날씨여서인지 도로 중간중간에 이렇게 도로가 한강물입니다~^^.


러닝화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천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발이 젖으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몇 번이나 피하고 피하고 돌아서 가는 길인데 여기서 또 물 만났습니다. 요즘 제가 코로나 양성으로 감기 몸살 이후 컨디션이 회복되고 있어서 달리기 물 만났네 하고 생각 중인데 이런 물을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옆으로 흙을 밟고 가는데 흙이 물컹물컹해서 발이 빠질 것 같아 걱정이 되더군요. 다시 되돌아와서 산책길로 달립니다. 오늘은 돌고 돌아가는 길과 멈추는 길이 많아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지네요.


8~9km 즈음에 한강이 나왔습니다. 이런 안개 낀 한강은 걸어서는 처음 만나봅니다. 비 올 때 나올 일이 없었으니까요. 3p 바인더 추천 북리스트 '타이탄의 도구들' 책 덕분입니다.


안개 낀 한강 풍경


마치 영화에서 나올법한 섬처럼 안개 싸여 있는 모습이 달리기를 멈추게 합니다. 달리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게 됩니다. 달리는 목적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달리는데 이런 순간을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 게 뻔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게 뭔 의미가 있을까요? 주위를 살피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달리기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습니다.



물 사려다가 닫힌 편의점


목이 말라서 편의점을 찾고 있습니다. 남편, 아들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끓이는 라면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편의점을 향해 달려갔건만 공사 중인지 문이 닫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더 가보기로 합니다.


선상 편의점 찾아가다

선상 편의점에서도 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달려가 보았습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역시 문이 닫혀 있었죠. 그냥 집으로 가기에는 10km 이상 달려야 하는데 힘들 것 같아서 다시 편의점을 찾아 나섭니다. 물을 찾아서요~^^


한강 양화 2호점 편의점

다행히 한강 양화 2호점 편의점 발견했습니다. 여기는 와본 적이 없는데 궁하면 찾게 되는군요.


들고 갈 것을 생각해서 작은 생수와 아침을 먹지 않아서 허기가 지기 때문에 초코파이 2개를 샀습니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달리면서 먹기 시작합니다.


작년 12월 하프 달리기 할 때 중간 지점에서 주는 귤과 초코파이 한 조각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죠. 간식이 맛있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출 수 있어서 더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17~18km 지점이었는데 최고로 힘들었던 구간이었어요.


이제 반환점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돌아갑니다.

20km 구간별 기록


11km 지점에서 간식을 사서 기록이 가장 저조합니다. 저 같은 수준은 기록을 아직 논하기보다 연습에 초점을 두고 달리지만 나중에 기록을 보면 흐뭇하고 뿌듯합니다.

16~19km에서 저와 타협을 하고자 자꾸 꼬드깁니다.



"힘들잖아,

오늘은 그만 달려."


"15km 잘한 거야,

그만 달려."


그만할까, 더 달릴까?

하프가 만만치 않는구나....

다시 힘들 때 하는 하나, 둘을 세어봅니다.

하나 둘도 지겨워서 하나에서 열까지 반복해서 세어봅니다.

주위에서는 일요일 아침에 조기 축구를 하러 온 팀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분들도 축구가 재미있어서 가족들 모두 자는 일요일 아침에 나와서 축구를 하는 거겠지'

결국 19km 즈음에 제 자신과 타협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 오늘은 20km만 달리자,

그것도 잘한 거야."


22km가 목표였지만 20km에서 멈추었는데 다리가 무지 아파지기 시작했죠. 무릎도 아파지고 오른쪽 발바닥은 처음으로 아팠습니다.


조금 걷다가 광명 마라톤 클럽에서 배운 러닝 후 몸풀기를 하는데 관절들이 삐거덕거립니다. 아프지만 풀어줘야 내일 덜 아프고 다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스트레칭을 합니다.


20km 거리 앱


2km는 걸어서 왔습니다.

힘들어서 멈추었지만 걷다 보니 '2km를 마저 달릴 걸 '하는 아쉬움도 생기더군요. 사람 마음이 이렇습니다~^^ 다음 주에는 제 마음에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 몸 회복 기간이니 그리 무리하지는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아쉬움이 묻어나는 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20km는 생애 두 번째 달리기로 성취감을 주었습니다. 5km도 걷다 말다 했는데 20km 라니 상상할 수 없는 거리였습니다. 10km 처음 달릴 때도 집에 가서 쓰러져 잤는데 20km라니, 내가 많이 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지난번 20km 달린 후보다는 다리, 무릎이 덜 아픈 것도 놀라웠죠.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다가 택시를 타고 귀가했는데 오늘은 충분히 걸을 수 있고 통증도 아주 약해집니다.


냉이에 앉은 이슬들


냉이 위에 있는 이슬 사진을 찍으려고 앉았는데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납니다.




집에 와서 보니 양말에 빵구가 2개나 났네요. 오랜만에 보는 빵구입니다. 20km가 먼 거리였나 봅니다.

편안함 침대에 누워서 다시 '타이탄의 도구들'을 펼칩니다.


매일, 경찰에게 쫓기는 것처럼 땀을 흘려라. 그것만이 우리 정신 속의 찌꺼기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유일한 배출구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이 망하거나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데는 극도의 경계를 한다.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건강이 가장 먼저 무너진다.

-타이탄의 도구들 301p-


정신의 찌꺼기가 많이 빠져나갔습니다. 다음 주 일정 중에 20km 달리기보다 힘든 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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