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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km 장거리 달리기 해내다

풀 마라톤 도전하다



인간과 동물의 몸은 대사 과정에서 식품이라는 유기 연료를 태워서 거기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근육의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핵심은 근력이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475p -


나의 근력은 과연 36km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달리기 전 준비물


지난주 월요일 33km로 달려서 자신감이 생겼다. 몇 번이나 30km를 실패했는데 해내서 무척 기뻤다.


오늘 (2022년 10월 8일 토요일)이 마지막 장거리 훈련이다. 33km를 한번 달렸지만 풀코스를 달리기엔 불안하여 오늘 36km를 도전한다. 지난주 토요일이 36km 훈련하는 날이었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오늘 다시 시도하려고 한다.


최소한 2회 정도는 30km 이상을 달려본 경험이 있어야 42.195km 대회에서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많은 마라톤 훈련들이 거의 36km까지 훈련 후 휴식기간 2~3주를 거친 후 대회에 출전하는 스케줄이 많았다.


저녁 6시 훈련이었지만 다른 분들과는 거의 1시간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4시부터 달리려고 나선다.


출발 전 하늘



하늘은 맑다.

달리기에도 요즘 너무 좋은 날씨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이럴 때 달리지 않으면 언제 달리겠는가.

그나마 추울 때도, 더울 때도 달렸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달리기 산책로


매일 나서는 산책로 길이지만 비장감이 어느 정도 흘러내린다.

나만의 비장감.


혼자서 뛰어보리라.


광명 마라톤 클럽 김 00님에게 에너제젤을 7개를 샀다. 오늘 3개, 대회용으로 4개를 사용할 예정이다.

10km, 20km, 30km에 먹으면 괜찮다고 한다. 중간에 바나나를 먹으면 힘이 나곤 하는데 김 00님은 바나나보다 흡수가 빠른 에너지 젤을 먹는다.

올해 3월 하프 달리기 할 때 한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다지 먹는 느낌이 좋지 않아서 먹고픈 마음이 없었는데 장거리에는 필요할 것 같아 미리 연습하면서 먹어보려고 한다.


혼자서 준비운동을 하고 달리려는데 이 00 님도 오셔서 미리 달리려고 간식과 물을 가져오셨다.


연습이 부족하거나 개인적으로 장거리 하려는 분들은 6시가 시작인데도 미리 4시에 와서 달리려고 하는 마음이 같아서 흐뭇한 웃음이 났다.


6km 거리를 왕복하면 12km가 되는데 3회 왕복(36km) 하려고 한다. 한강까지 가고 싶지만 오려면 캄캄해져서 무섭기도 하고 가로등이 없는 구간도 있어서 자전거가 많이 다니기 때문에 위험할 것 같다. 클럽에서 가까운 거리로 왕복하기로 정했다.


4시 13~6시 40분 기록




1~18km 구간 기록



7분 20~30초/km로 20km까지 달리고 그 이후에는 7분 10초대로 달려보고 나름 계획을 세우고 달리기 시작한다.


1~2km엔 항상 몸이 무겁다. 워밍업이 된 후에야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옆구리가 아프지 않도록 호흡에 집중한다. 2회 들이마시고 2회 내뱉기를 항상 의식하면서 달린다.


12km 지점에 오니 스마트 워치는 켰는데 핸드폰과 연결을 시키지 않은 것을 깨닫고 핸드폰과 연결한다.

스마트 워치만 보면 되긴 하지만 나중에 구간 기록을 보고 분석을 하려면 필요하다. 얼른 연결을 하고 바나나도 반 개 먹고 다시 출발한다.


갑자기 스마트워치가 리셋이 되어버렸다.

지난주 월요일에도 이러더니만 오늘도 이런다.

뭔가 문제 있는지 서비스센터에 가봐야겠다.


감으로 20km 지점에서 에너지 젤을 먹기 시작한다. 끈적끈적한 느낌이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다행히 망고 맛이다. 조금씩 한 모금씩 먹으면서 달린다. 수돗물이 있는 지점 근처에서 마지막을 먹고 물로 입을 헹구고 끈적한 손도 씻고 다시 달린다.


에너지 젤을 먹었지만 20km 이상이라 달려서인지 몸이 지쳐간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으면 바로 힘이 생기듯 힘이 날 것 같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


반가운 광명 마라톤 클럽 회원분들이 교차한다. 6시가 넘었나 보다.


2022 춘천 마라톤에 3시간 30분 목표인 에이스 두 분이 먼저 달려온다. 달리기 할 때는 아는 사람만 봐도 반갑다. 더군다나 같이 훈련하는 클럽 회원분들은 같은 희로애락을 하는 분들이라 더 반갑다.

잠시 후에 회장님, 총무님, 박 00님을 만나서 반가웠다.

오랜만에 오신 신 00 님 부부도 응원을 하면서 지나친다.


스마트 워치가 작동 안 한 5.21km 자동 저장


겨우 24km 마치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물을 마시고 바나나를 먹는다. 에너지 젤보다 바나나가 더 나은 듯하다.


이 00님은 이미 25km를 달리고 오셔서 마무리하셨다.


아, 고민이 된다.


지금 주저앉고 싶다.


12km를 다시 다녀와야 36km인데 난 이미 지쳤다.

이 00님은 3km만 더 다녀오라고 한다.

난 12km를 더 다녀올까 하는데 3km라니...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12km 다녀올게요"


뭐, 이런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하다니. ㅎㅎ


그러나 이미 발걸음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3km 지점에서 목이 마르기 시작했고 물을 마시고 5초간 정지해서 가만히 서 있었다. 27km.


갈까? 말까? 하늘을 쳐다본다!



27km 지점이 최고로 힘든 지점이다. 춘천 마라톤 코스로 치자면 사상 대교 근처인데 거기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서 걷는다고 한다.


여기는 오르막도 없는 곳에서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평지인데도 이렇게 힘들면 춘천 마라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하고 자문해 본다.


에라, 모르겠다.


무조건 GO! GO!


28km에 오니 한계에 다다른다.


에구머니나, 힘들다.


지난주 월요일 비 올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오늘이 왜 힘들까? 신발도 젖지 않고, 점퍼도 젖지 않고 말짱한데 왜 비 오는 데도 달린 월요일보다 힘들어 보이지?


마음의 문제다.


그때도 힘들었다.

지금이라서 더 힘들어 보이는 것뿐이다.


에이스인 김 00님이 지나친다.


마지막 에이스인 홍 00 님도 지나칠 찰나, 같이 동반주 해달라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이제 남은 분은 홍 00님 밖에 없다. 모두 지나쳤다.


"제가 지금 너무 힘든데 혼자서 8km 달릴 자신이 없거든요. 혼자 가다가 포기할 것 같아서 그런데 같이 달려 주실 수 있을까요? 오늘 36km 완주해야 하거든요"


흔쾌히 수락하시고 같이 달린다.


2km를 더 가서 반환점을 돌고 나왔다.


목이 마르기 시작한다.


"수돗물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1.3km 더 가야 해요"


입안이 바짝바짝 마른다. 5km를 달려왔으니 목이 마를 만도 하다.


오직 수돗물만 바라보고 달린다.


" 말할 수 있으세요?"


" 아뇨, 제가 힘들어서 말 못 하겠어요."


"제가 말해도 될까요?"


" 아뇨, 제가 힘들어서 못 들을 것 같아요"


" 네, 알겠어요."


힘이 들어서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


그냥 달리기만 한다. 좀 머쓱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마디도 못하고 한 마디도 못 들을 것 같았다.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달린다.


몸의 저항이 오는 시기니 7분 30초/km를 7분 20초로 달려보면서 이겨내자고 하신다. 지금도 힘든데 10초를 앞당겨 보자고?


몸의 저항을 시간으로 이겨내 보자.

생각과 달리 쉽게 나아가지 않는다.


마지막 3km가 남았는데 왜 이리 힘들까?


내가 더 달릴 수 있는지 체크하신다.


" 호흡은 편안하세요?


" 네, 가쁘지 않고 편안해요."


" 아픈 곳은 없으세요?"


" 무릎이 아픈데 참을만하고, 통증보다는 뻐근한 거니까 달리는 데는 괜찮아요."


허리 주머니에서 ABC 초콜릿을 꺼내 하나씩 먹으면서 달린다. 사탕보다도 나는 초콜릿이 더 잘 맞아서 6개를 챙겼건만 이제야 하나를 먹는다.


에네지 젤도 2개가 남아 있지만 거리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아서 그냥 먹지 않기로 했다. 끈적 느낌이 싫다. 바나나가 훨씬 낫다.


조금이라도 7분 10초/km로 시간을 단축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마지막 2km~


마지막 12km



에구 힘들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 둘, 하나, 둘만 속으로 외치면서 달린다.


하나, 둘 하다 보면 끝이 나오겠지.


옆에서 굳건하게 흔들림 없이 같이 뛰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다.


일부러 동반주 요청까지 했는데 내가 걸어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나름대로 홍 00 님도 오늘 훈련 계획이 있었을 텐데 괜히 도움을 요청한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500m를 남겨두고 서 00님이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저야 늦게 들어올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에이스인 홍 00님이 안 오셔서 혹시 자전거랑 부딪히기라도 했나 하고 찾으러 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아니었으면 홍 00님은 벌써 도착했을 시간이었으니까.


서 00님은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뒤에서 힘을 내라고 응원해 주신다.


코끝이 찡해진다.


옆에서 달려주시고 뒤에서 응원해 주시고.


마무리를 잘해야겠다.


도착하니 밤 9시


밝은 4시 13분에 시작했는데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캄캄해진지는 오래되었다.


마지막 스퍼트를 해본다.


이렇게 있는 힘껏 달려도 몸은 화수분처럼 하루 이틀 쉬면 다시 힘이 생긴다. 있는 힘 다 써보자.


100m 달리기 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쥐어짜 내서 마무리했다.


마지막 12km 기록


도착점에서는 세 분이 박수로 감사하게도 맞이해주신다.


천천히 200m를 달리다가 돌아왔다. 물을 2컵이나 마신다.


모두들 첫 36km인데 잘했다고 칭찬해 주신다. 깡다구가 있다고 하면서 그래야 해낸다고 하신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스트레칭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덜덜 떨린다. 벤치 의자를 잡고 겨우 스트레칭을 마친다.


해냈다!


기다려 주신 다섯 분을 위해서 저녁을 사드렸다.


52년 인생에 처음 달린 36km를 뛰고서 저녁을 사지 않으면 언제 산단 말인가


끝까지 기다려주신 광명 마라톤 클럽 회원님



홍 00 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잘했다고, 혼자서는 달리기 힘든데 같이 달리면 해낼 수 있다고 회장님이 말씀하신다.


춘천마라톤 풀코스는 충분히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5시간 목표 달성도 가능할 거라고 하셔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달린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통을 참아내고 다시 도전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총 달린 35.97km


4시간 31분 동안 달리다니 체력이 많이 늘었다.


나는 오늘, 내가 끝까지 해낼 줄 알았어!


같이 응원해주신 광명 마라톤 회원 덕분이다.


인간의 근력은 달릴수록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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