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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은 May 14. 2018

남의 가족 세족식 사진을 보고 떠오른 단상

세가지 소원

페이스북에 동아리 선배가 이런 사진을 올렸다.

소원아 힘내...


예쁜 색시랑 결혼해 뒤늦게 아이를 낳은 선배는 아이가 예뻐 죽는다. 나는 선배 가족을 다 안다. 예전에 선배 따라 지방에 내려가 일한 적이 있는데, 옆집에 살았다. 그 때 저 아이는 기어다녔는데 이제 저렇게 커서 아빠 발도 닦아 주네. 세월이 빠르다.


사진을 보고 뜨끔했다.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간은 초등학교 1학년 때로 거슬로 올라간다. 7살 밖에 안 된 꼬마들에게 담임 선생님은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님의 발을 닦아 드리고 사인을 받아 오라는 숙제를 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식은땀이 나면서 토할 것 같았다. 발 닦는 게 더러워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가 너무 어려웠다.


엄마 아빠는 맞벌이 부부였다. 학문을 하는 30대 초반의 사람들이어서 자기계발에 빠져있었다. 날 두고 멀리 공부하러 가기도 했고, 돈을 벌러 나기도 했다. 육아에 서툰 어린 부모 대신, 세 자식을 키워 살린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머니 집은 아파트 12동 이었고 엄마 집은 5동이었다.


그들도 부모는 처음이었어서 나를 어색해 했고, 나도 그들이 어색했다. 할머니랑 있으면 맨날 드라마를 봐도 되고, 조금만 아파 보여서 유치원 가지 말라 했는데, 부모는 아파도 유치원에 가게 했고,  TV를 바보상자라고 못 보게 했다. 7살이 이름도 쓸 줄 모르냐고 몇 시간동안 붙잡고 한글을 가르쳤다. 밥도 맛 없는 걸 해줬다. 그래서 그 숙제를 할 수가 없었다.


왜 숙제를 안 했냐고, 오늘 가서 하라고 추궁하는 선생앞에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땐 아주 쑥맥이고, 바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몇일을 미루다 그냥 했다 하고 거짓 감상문을 써서 낸 것 같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더니, 일곱살 마음 서른살까지 왔다. 지금도 여전히 조금 그렇다.


물론 예전보단 훨씬 친해졌다. 다양한 계기들이 있었고, 나도 부모님도 달라졌다. 하지만 부모님과 있으면 최대한 다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가 보인다. 동생에게도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에겐 얼마나 살가운 나인데, 가족에겐 도대체 왜 그럴까. 마음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져도 부끄럽고, 겉으론 다정하게 말하지만 그 말이 심장까진 가지 못하게 컨트롤한다(?) 쓰고 보니 이상하네... 가족들에게 죄송합니다 ...


학원이라도 가야 하나.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런... 하지만 그럴 여유까진 없어서 책으로 공부해 보려고 노력하는 나날이다. 처음 그 생각을 하게 된건 독립서점에서 본 한 권의 책 제목 때문이었다. <엄마가 모르는 나의 하루하루가 점점 많아진다> 보는 순간 슬퍼졌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 책은 조금 무겁다. 무거워서 다행이라는 땡스북스 서점 직원의 추천사가 있었다. 침대에서만 울었다고.


하지만 엄마보다 가까워지고 싶은 건 아빠였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 그날의 아버지에게> 는 아버지에 대한 시, 그리고 그 시에 얽힌 짧은 단상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마종기, 신철규, 박준, 진은영, 김수영 등 다양한 시인들의 시가 남겨져 있다. "아버지의 스물 일곱과 만났다" 하는 챕터를 보고 사기로 결심했다.


삶과 죽음이 싸우듯
아버지를 처음 본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그리고 눈물이 왼뺨과 오른뺨의 길이를 재듯
우리는 서로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는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모음집이다.



광화문 교보문고의 제일 사람 없는 매대에 놓여있던 이 책에 눈을 돌리게 된 건 띠지 때문이다. 신뢰하는 사람의 추천의 이렇게나 힘이 세다.  레시피집이기도 하고 마음집이기도 한 이 책엔 <무항생제 대패삼겹살의 기찬 효능> <멜론 사러 가는 길> <아무래도 보리차> 등의 소제목이 있다. 편집자인 아내를 둔 인문학자의 글은 이렇게 시작했다.


내 삶의 속살이 드러나는 글을 이렇게 길게 써본 적이 없다
이렇게 순간순간 스냅사진처럼 찍어두고 싶었던 적도 없다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다는 사실이 이번만큼 큰 위로가 되었던 적이 없다. 아내는 이 포스팅을 보지 않기에 두어 개를 읽어준 적이 있다.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요리 글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역시 유명한 편집자였던 아내는 글에 대해 평가해주었다.


 '편집자의 눈으로 보아도 글이 좋다. 절제되어 있고 우아하다. 슬픔은 그림자처럼 곳곳에 스며들어 숨어 있지만 독자들에게 들키고 싶어하고, 그 슬픔은 기쁨을 준비하네. 슬픈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읽으면 행복할 거야.'


낯간지러운 아내의 평가를 굳이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슬픔과 괴로움, 낯선 것들끼리의 갈등... 그 모든 것들이 글을 통해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개적으로 SNS에 일기를 쓰는 나는 가끔  너무 관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들키고 싶은... 들키고 싶은 이란 말에서 따뜻함을 느꼈다.


몇일 전 어버이날에 쓴 글을 브런치에 올렸다. 아무도 안 보는 브런치였는데 카카오톡 채널에 잠시 떠서 조회수가 올라갔다. 1000명이 봤습니다. 2000명이 봤습니다. 5분 간격으로 숫자가 올라갔다. 플랫폼 노출의 힘은 대단했다. 기쁘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슬픔을 팔아서 조회수를 올렸네. 하지만 이 편집자님의 말에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 슬픔은 기쁨을 준비하네'


모든 것들이 글을 통해 기쁨이 되기를.

글쓰기를 하는 우리 모두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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