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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닛 Nov 22. 2023

조용한 신뢰

신뢰할 때 도약한다

초등학교 4학년쯤 되면 훨씬 어린아이들보다 말수가 줄어들게 된다. 종알종알 이야기하던 것에서 조금 생각하고 말하는 편인 것 같다. 음… 사실 아이마다 다르긴 한데 일단 나는 아이들을 사회적인 관계로 만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만큼 자신을 오픈하진 않는다.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3학년 때부터 나와 함께한 4학년 아이들이 있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데 수업은 아주 열심이다.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로 의미지도(마인드맵)를 적는데 개중에 N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열정적이었다.


의미지도를 적을 때 아이들에게 읽었던 책을 주고 정리하게 하는데, 이게 시간적 압박도 있고 아이들이 4명이다 보니 책을 돌려가며 봐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사실 N이 보고 있던 책을 M도 봐야 했다. 나는 부드럽게(분명 부드러웠다!) N에게서 책을 가져와 M에게 건넸다.


그런데 이게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고 나서 N의 어머니와 통화할 기회가 생겼는데 글쎄, 그 얘기를 꺼내지 뭔가. 자신이 다 쓰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책을 가져갔노라고. 오,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그랬군요. 제가 알아채지 못해 미안하네요. 사실은…”


상황설명을 하고 어머니와 나는 살짝 웃었다. 어쩌면 분위기가 심각해질 수 있었는데(별거 아닌 거 같지만 정말 별거 아닌 거로 학부모와 선생님은 마음과 관계가 상하기도 한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니 엄마도 별 말 하지 않았다.


조용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열정이 있다. 선생님으로서 나는 아이들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아이의 가능성을 신뢰할 때 아이는 용기를 가지고 뛰어오를 수 있다.


처음에 이 아이들은 의미지도도 스스로 적기 어려워했다. 약 1년 반동안 연습한 결과, 이제는 스스로 중요 핵심을 찾고 정리하는 것에 능숙해졌다. 꾸준한 연습과 본인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잘못 적어도 질책하지 않았더니 본인들의 방식대로 조금씩 성장해 왔다.


N의 옆자리 친구 S도 조용하다. 심지어 M는 1년에 5마디 할 정도다. J는 원래 외향적인 것 같은데 이 조용함에 이미 적응을 했다. 이 네 명이 모이면 조용한 교실이 완성된다. 그러나 이 침묵이 뜨겁다. 결코 식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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