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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두려운 가지치기

너를 믿어!

by 그사이


3년째 꽃을 피우는 흰꽃기린은 처음에 비해 키가 두 배보다 더 커졌다. 모습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긴 줄기와 각각 줄기 끝부분에 열개쯤 초록잎이 나있고, 정갈한 모양의 하얀 꽃을 계속 피우며 키가 크고 있다.

그 애는 개량종이 아닌 본모습 그대로 가시 달린 꽃기린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살기 위해 그렇게 가시를 갖게 되었니?"

사연을 묻고 싶어 진다.


창가에 위치한 탁자 위.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가시 달린 꽃기린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가끔 찔리고 긁혀 피를 보는 상처를 입고 나면 그 애가 뾰족한 가시로 꼭 누군가를 해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 흰꽃기린의 존재가 무의미한 가족들이 창밖을 보려고 다가갔을 때 그 애가 가시로 찔러 상처를 입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걱정을 한다.

간혹 제 몸에 난 잎이 제 가시에 닿아 찢어지기도 한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똑똑한 그 애는 고통을 감수하며 뾰족한 가시를 키워야 한다고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남을 해칠 거란 내 생각이 꽃기린 입장에서 보면 무척 억울할 것 같다. 그건 그 애가 가진 마음이 아니니 말이다.


그 애는 무럭무럭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

“저러다가 1미터가 되면 어쩌지?”

점점 자라는 그 애가 공격적이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줄기를 반쯤 자르는 강전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가지를 자르면 맑은 물 같은 수액이 나오는데 꽃기린은 잎을 떼거나 가시를 자르면 우유 같이 하얗고 찐득한 수액이 나온다. 그 수액이 나오면 피가 나는 것처럼 생각되어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린다.

식물의 가지를 자르는 일은 언제나 죽을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하얀 피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꽃기린의 가지치기는 그래서 더 두려웠다. 가지가 단단하게 목질화되기 전에 해줬어야 하는데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가지치기는 위험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식물은 약하고 여리다고 오해를 받는 편이다. 불에 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에서 연두색 고사리가 피어오른 것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신비로웠다.

사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을 식물만큼 잘하는 것은 없다. 믿자.


피톤치드가 평화로운 안식만을 줄 거란 기대를 하지만 실제로 식물을 키우다 보면 종종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된다. 왠지 나는 자식을 키워내는 일과 유사함을 느낀다.

갓 태어난 천사 같은 아기가 때에 맞춰 눈을 맞추고 뒤집기를 하고 일어나 직립보행을 한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생기는 변화들은 많은 무사함을 말해준다.

모든 일들이 때에 맞춰 일어나는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 “잘 키웠네.” 하고 칭찬받으며 마치 부모가 만들어 냈다고 여기지만 먹을 것을 주고, 마음을 주었을 뿐이다. 모든 일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아기가 가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는 것을 알아줘야 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대가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육아의 노고가 허사란 이야기는 아니다.

아기가 눈의 초점을 맞추는 일은 부모가 초미의 관심을 갖는 최초의 일이다. 품에 안겨 눈을 맞추고 희미한 미소를 짓던 그 기쁨의 첫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너, 분명히 날 알아본 거지?"


생사의 고비를 넘겨도 자식걱정은 새롭게 계속 나타난다.

아이가 자라며 부모를 기쁘게 하려 애쓰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진 날이 있다.

"넌 3살까지 우리한테 충분한 효도를 다 했어. 보여주려고 너무 애쓰지 마. “라고 굉장히 마음 넓은 엄마인양 말한 적이 있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말을 종종 잊고, 언제나 속 좁은 엄마가 된다.

속 좁은 엄마의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분명히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믿는다.


지난겨울에 키가 너무 커져서 자른 몬스테라는 반년정도가 지나는 동안 자른 단면이 병들지 않고 잘 아물었다. 죽지 않아 다행이다. 그러더니 어떤 틈도 없어 보이는 단단한 줄기에서 동그랗게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싹을 틔어내며 눈을 맞췄다. 살아줘서 고맙다. 드디어 첫 번째 통잎이 나오고, 두 번째 잎은 세 개의 구멍을 가진 예쁜 찢잎을 펼쳐졌다. 몬스테라를 키우는 사람들은 찢잎에 환희를 느낀다. 멋지게 해냈구나. 기특하다.

몬스테라는 물 같은 수액이 나와 가지를 자를 때 덜 두렵게 느껴진다. 가지치기를 하고 나면 다시 예쁘게 자라난다는 것을 여러 번에 걸쳐 알게 되어 수형이 미워지면 가차 없이 자르게 되었다.

몬스테라의 못생김을 견디고 기약 없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오랜 인내의 시간은 무엇보다 뿌듯한 순간을 맞이하게 한다. 구멍이 하나도 없는 단조로운 통잎이든 구멍을 많이 가진 화려한 모습의 잎이든 그것은 모두 고맙고 신비로운 일이다.

"몬스테라야, 살아줘서 고맙다."


가지치기는 식물의 소생 기운이 충만한 가장 좋은 때인 봄. 지금 해야 한다.

꽃기린의 가지를 치면 나무토막 같은 가시줄기의 못생김을 감수해야 하고, 한동안 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저건 왜 키우는 거야?"라는 말을 듣는 것도 예고되어 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소독한 가위로 최소한의 상처를 내도록 가지를 단번에 자르고,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흰 수액을 닦아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손도 가시에 찔려 상처가 생길 것이다.

그러고 나면 흰꽃기린은 스스로의 시간에 접어든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고 상처가 아물고 나면 긴 줄기로 가던 영양을 새 삶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단단한 가시 줄기에서 새 잎을 틔워내리라 믿어준다. 그러다 속 좁은 내가 욕심을 부리며 화려하게 꽃 피우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고맙게 살아만 있어 주면 된다. 얼마든지 믿고 기다려줄 테니..

"진심이야."


식물도, 자식을 키우는 일도 언제나 겁나고 두렵다. 살아내려 애쓰는 것을 볼 때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것인지 잘 알지 않는가? 그러니 그저 믿어주고, 살아내고 있는 기적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로 하자.


"이제 가지치기를 하자."

스스로 가시를 키우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한 꽃기린으로 씩씩하게 살아낼 것이다.

가지치기를 고민하는 내게 식물 선생님은 오늘도 인생을 가르쳐준다.

(배운다고 실전에 적용하진 못하지만..)


넌 잘 살아낼 거야.
믿어.
고마워.


과감히 자른 줄기에서 잎이 나오고 반짝이는 찢잎을 펼쳤다. 그것은 모두 기적.
여전히 열심히 꽃을 피우며 키가 크는 흰꽃기린
넌 잘 해낼 거라고 믿어

* 꽃기린 꽃말 :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아는 식물> 흰꽃기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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