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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감자

제철 하지감자 먹어봤나요?

by 그사이



친구들과 만나 한바탕 수다를 떨고 밥과 커피도 나눠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 가진 스트레스를 민들레 홀씨만큼 훅 불어 날려버렸다.

그리고 비워진 스트레스의 자리는 손에 들린 묵직한 무게만큼의 사랑으로 채워졌다.


감자. 양파. 마늘.

반짝반짝 거리는 쇼핑몰에서 만난 우리는 농산물과 수세미를 나눠 갖었다.

돌아오자마자 싱싱한 흙향이 사라지기 전에 감자를 찐다.

달콤하고 고소한 감자의 향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알찬 감자가 아주 잘 익어 흙내음 나는 껍질이 톡톡 터지고 포실포실한 속살이 보인다.

'어디 맛만 볼까? 이건 너무 작으니 다들 귀찮아할 거야.'

제일 작은 감자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호호 불어 뜨거운 감자를 입안에 넣으니 자연의 단맛이 느껴진다.

분명히 점심으로 떡만둣국을 잔뜩 먹고 왔는데 이성을 잃고 탁구공만 한 감자 다섯 알을 먹어버렸다.

딱 제철인 하지 감자가 꿀맛이다. 어쩔 수 없지.


갈래머리 시절에 만난 친구의 부모님이 취미로 하시는 농사로 힘든 것이 싫다고 우리는 한마음으로 말을 나눈다. 부모님의 건강걱정을 하다가 친구가 말한다.

"아휴, 자꾸 종류가 많아져. 아버지가 심고 다 엄마일이 되고.. 말 안 들어. 말 안 들어."

감자. 고구마. 마늘. 양파.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을 나는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는다.

슬하에 자식 셋을 두시고도 그 곁가지에 달린 주변을 모두 챙겨주시는 사랑을 가지신 분들.

엄마를 잃은 나를 보시겠다고 우리의 약속 장소에 나오셔서 꼭 안아주신 품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여든을 넘기신 친구의 부모님이 농사지은 결실을 오랫동안 먹고 싶다는 염치없는 마음이 든다.


스트레스는 민들레 홀씨가 되고
그 빈 자리를 채운 하지(夏至) 감자




늦게 돌아온 아이가 설탕도 소금도 없이 감자를 까서 먹으며 맛있다고 한다.

큰애 : 이 감자 참 맛있어. 어디서 샀어?

나 : 하지 감자라 맛있는 거야. 삼척 할아버지가 지으신 거야.

큰애 : 그렇구나. 겨울에 고구마도 참 맛있었는데. 어! 너구리 수세미 어디 갔어?

나 : 감자, 양파, 마늘이랑 바꿨어.

큰애 : 아니 무슨 석기시대야? 물물교환을 하고 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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