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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온 책

고맙고 예쁘다.

by 그사이


“매달 딱 오만 원어치만 사고 싶은 거 사.”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이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말한다.

“너 뭐 살 거 있지?”

“난 샀어. 이미 오고 있지.”


서른이나 되는 애들이 엄마밥을 먹고 비가 오는 퇴근길에 우산 든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세상에 꽁(공, 空)이 어디 있나?

하숙비를 내라고 했다.

이미 독립생활을 해본 큰 애는 그것이 크게 남는 장사란 것을 잘 알고 흔쾌히 하숙비를 내기로 했다.

처음 직장 생활을 하는 둘째는 그 가치를 환산하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지금까지 공짜였으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싫으면 나가서 살아. 혼자 살면 재밌을 거야. 네가 밥 해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전기 가스비 내고, 네 월급의 1/3을 남의 부모한테 주면 돼. “라고 했더니 금세 결정했다,

물론 월세보다 훨씬 싼 금액으로 애들이 하숙 들어 있다. 내가 밑지는 장사다.

“올릴까?”

솔직히 그냥 던져본 말이었는데 덥석 문 순진하고 착한 내 아이들이다. 세상을 어찌 살까 싶다. 그렇게 나는 자식에게 하숙비 받는 악덕 업주 같은 엄마가 됐다.


먼 거리라 한 시간 반을 새벽 출근했다가 밤에 한 시간 반을 버스에 실려 돌아오고, 폭포수 아래서 득음이라도 해야하듯 종일 말을 하는 일로 돈을 번다.

자식들이 몸고생 하여 번 돈이 나는 뜨거운 불덩이처럼 생각된다. 손에 받아 들면 어쩔 줄 모르겠다. 통장에 찍히는 이름은 마치 애잔한 아이 얼굴로 보인다.

아이들이 주는 돈을 받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하며 쓰기는 아주 어렵다.


가만히 생각한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고만 있으면 아이들이 좋아할까?

오래전 무슨 용돈을 주냐고 너나 쓰라며 다시 내 가방에 몰래 쑤셔 넣거나 나를 측은하게 보는 엄마가 참 싫었다.

“좋아라 하면서 그냥 좀 써!”

라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일은 부모자식 간에 내내 불편한 도돌이표 악보 구간 같은 일이었다.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다.


“그래. 나를 위해 기쁘게 쓰자. 오만 원만.”

둘이서 십만 원을 지출하기로 했다.

남편은 아직 이달의 오만 원을 안 썼고, 나는 이미 썼다. 사실 이미 책을 주문하고 남편에게 선심 쓰듯 말한 거였다. 귀신같은 남편에게 금방 들통이 났다.


이른 아침, 서점카트에 가득 담겨있는 책중 꼭 사고 싶은 것을 신중히 고르고, 매일 출첵으로 쌓인 포인트와 무슨 선착순 지원금 3000원까지 챙겨 넣고 주문했다.

밤 열 시. 특송으로 하루 만에 책이 왔다.

“세상에 무엇이 이렇게 예쁠까? ”

내가 좋아하는 새 책의 향기를 킁킁 맡으며 깜깜한 밤에 도착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책을 만지작 거리다가 다음 달엔 무엇을 살 것인지 벌써부터 우선순위를 정해둔다.

“진짜 좋다.”


하숙집 주인은

밤에 온 책이 참 고맙고 예쁘다.

오늘의 글이 자식자랑 같지만 사실은 새 책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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