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책풍년.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 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 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 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구름이 흘러가 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가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최희준. 노래 <하숙생>
이 달의 책이 도착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무려 6450원이나 할인받았으니 럭키비키다.
구입할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단순히 기분이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여파가 컸던지 에세이가 읽고 싶었고, 마음의 순화가 필요했다.
받는 하숙비 중 책값으로 5 만원을 지출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으니 한 권을 더 사야 하나? 서점 장바구니엔 책이 그득하니 손가락만 까딱이면 된다. 남은 액수에 맞춰 <내 이름은 태양꽃>을 살까, <설국>을 살까. 그러다 보면 배송비가 아깝다며 또 다른 책도 넣겠지.
아무래도 일이 커질 것 같으니 이달은 참기로 했다. (잘했다. 그사이.)
안개 같은 목소리라고 생각한 가수의 노래는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열 살 남짓의 나이에도 하숙생이란 노래를 들으면 이유도 모르면서 숙연해졌다. 그때는 감정이 그리 길게 가지는 않았다.
이제 가수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이 세상에 방 한 칸을 빌려 머무는 하숙생인 나는 방 뺄 날이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이 들고부터 다른 욕심이 별로 없다. 욕심 낸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조금은 알게 되서인지 마음이 편해졌다. 물건들이야 중고마켓에 팔아도 되고, 그도 귀찮으면 내다 버려도 고만이다. 아까울 것이 없다.
그런데 어째야 하나..
책욕심이 멈춰지지 않는다.
책은 궁금해지면 장르에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읽는 편이다. 글에 생긴 호기심은 콩깍지처럼 눈에 씌어 무엇이든 재미있다.
무엇보다 새 책의 향기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이 자꾸 책을 산다.
현재 가진 책이 몇 권 일지는 모르겠다. 독립한 아이 책장을 내 것으로 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내 책을 빼서 여기저기로 옮기다가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얼마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책들이 그릇장과 강아지 비누 물건을 두는 선반에 마구 섞여있다. 좋아하는 것들 속에 섞인 책을 읽기 위해 고르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가진 책중에 읽지 못한 것이 꽤 된다. 만일 내 숨이 멈추는 순간이 된다면 읽지 못한 책들이 아깝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눈을 못 감을 수도 있다.
"내가 저 책을 못 읽어보고 가다니.. 윽!"
예전에 이사를 할 때 책이 많은 집이 가장 골치 아프다고 말하는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쩔 줄 몰랐다.
119동에서 121동으로 단지 안에서 이사할 때도.
타국으로 장거리 이사할 때도.
다시 귀국 이사를 할 때도.
공부하는 남자와 무작정 책 읽는 여자가 사는 집의 이삿짐은 언제나 책이 문제였고, 추리고 추려도 항상 여러 사람을 고생시켰다.
짐으로 생각하자면 미안하고 무거운 책.
무거운 책 속의 글이 내 안에 쌓여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벼운 나는 자꾸만 자꾸만 책욕심을 부린다.
매일매일 카트에 담는데 넣어도 넣어도 계속 들어가는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서점 카트는 정말 신기하다. 아이의 첫 직장이 책방이었던 것이 참 기뻤다. 오래 다녀주길 바랐는데 그 소망이 이루어지진 않았다.
이 달의 책중 <오토바이 타는 여자>와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를 시간대를 나눠 동시에 읽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전 날, 우리 집 1호실 하숙생이 전 직장 상사를 만나고 오면서 책을 선물로 받아왔다.
“난 읽을 새가 없을 것 같아. 집주인님 먼저 읽으세요. 단장님은 두 권중 이게 더 좋으셨대. “
“흐익!!!”
무게를 자랑하는 두 권의 책이 내 책상 위로 또 올라왔다. 게다가 절대 구입하지 않을 낯선 장르의 책인데 눈이 초롱초롱 해지며 설레는 건 왜일까? 공짜여서 그런가?
다음 달엔 이달에 남은 잔고를 합쳐 더 사들일 텐데 과연 방 빼기 전까지 가진 책을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싶어 조급한 마음이 든다.
순하게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부지런히 내 안에 글을 주워 담는다.
책 책 책을 담자.
낮에는 이 책
밤에 잠들기 전엔 저 책
더울 땐 그 책
지쳤을 땐 묵혀 둔 책
책 책 책을 담자.
카트에 담자.
내 안에 담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좋은 걸 어쩌겠어.
우스꽝스러운 글이 노랫말이 되면 어떨까?
멜로디도 붙여볼까?
안개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가수는 동창의 아버지셨다.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도 가수가 되신 그분은 인생이란 정도 미련도 두지 말고 가볍게 살다 가는 거라고 어른의 지혜를 노래로 가르쳐주셨다. 안갯속처럼 뿌였던 그 뜻이 이제 무엇인지 알겠다.
짐이 아주 많은 하숙생은 요즘 밤낮으로 짐을 줄이는 중이다.
마침 입추가 지났으니 곧 좋아하는 사색의 바람이 불어올 테지.
독서하기 딱 좋은 계절이 오고 있고, 책상엔 가을하늘만큼 높다랗게 책이 쌓여있으니 성급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덕분에 글 쓸 사이가 별로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