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주말농장

주말농장 이야기

by 하민영

이른 아침 구름 사이에 살짝이 햇살이 어리고 낮게 깔린 구름은 산아래까지 내려왔다. 멀리 하늘과 맞닿은 산은 구름이 내려앉았다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때를 놓칠세라 셔터를 눌렀는데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달라서 피사체를 통해서 다 담아내지 못했다. 봄에는 벚꽃을 흐드러지게 피워서 맘을 들뜨게 했던 벚나무는 벌써 군데군데 노란 낙엽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농장을 향해 달려가는 길도 한 폭의 그림이다.


농장에 도착하니 확연하게 달라진 날씨가 느껴졌다. 쌀쌀한 날씨로 긴팔옷을 입었는데 으스스하게 몸이 떨려오는 한기를 느꼈다. 가져온 외투를 하나 더 걸치고 나서야 몸으로 느끼는 냉기가 가셨다.


햇살이 들기 시작한 농장은 살짝 황톳빛에 주홍빛을 띤다. 농장의 모습은 볼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딱 두 구획에서 얻은 기쁨은 4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기하다. 이 작은 밭뙤기가 여러 채소들을 길러내고 인간에게는 양식을 주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정신적 수양과 위로를 주며,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준다. 농장은 자주 찾을수록 더 좋아진다. 사람이란 원래 자연과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전원생활을 꿈꾸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은 베이비붐 세대까지라고 한다. 그런데 2022년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러스틱 라이프’라고 하여 시골생활을 느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런 붐은 코로나 때문에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일까?

요즘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으로 인간이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일부는 맞는 말인 것 같다. 요 작물들을 잊지 못해서 자꾸 찾아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주 보다 더 자란 배추와 무는 병충해 없이 잘 자라고 있다. 밭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청갓도 수북하게 자랐고, 둔덕 귀퉁이에 심은 시금치도 수북하게 자라고 있다. 지난주에 심은 쪽파도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푸릇한 쪽파가 부끄러운 듯 제모습을 살짝 내민 모습이 새색시 같다.

신기하게도 채소들에게는 햇볕 한 줌이 얼마나 중한지 햇볕을 조금 더 받은 곳은 더 많이 싹을 틔웠고, 그렇지 못한 곳은 적었다. 어린 채소들은 햇볕 한 줌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채소들만큼이나 아직은 작고 어린 풀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꽃삽을 사용하려니 불편하다. 꽃삽은 농장에서는 효율적이지 않은 농기구다.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간혹 구멍을 살짝 파거나 작은 작물을 옮겨 심을 때만 쓴다. 김매기에 사용하기에는 영 불편하다. 그래서 꽃삽은 제쳐두고 손으로 쏙쏙 뽑았다.

호미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작물을 심을 때도 김매기 할 때도 구멍을 파야 할 때도 두루두루 쓰인다. 밭농사할 때 반드시 필요한 농기구가 호미다. 내가 농기구라면 쓰임이 많은 호미이고 싶다.

괭이는 넓은 곳의 풀을 매거나 땅을 파야할 때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시금치를 뿌린 도랑 둔덕으로 괭이로 긁어주며 김매기를 했다. 호미를 사용하면 섬세하게 좁은 공간의 김매기는 좋지만 쪼그리고 앉아서 작업해야 한다. 괭이는 넓은 공간을 서서 쓱쓱 긁어주면 된다. 시간도 절약되고 다리가 덜 아프다. 물론 작물들이 촘촘하니 뵈게 자라는 곳은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알맞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농사의 필수다. 새삼스럽게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하고 도구를 발달시켰다는 인류의 역사에 감탄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어떻게 알아냈을꼬.


구획의 둔덕에 몰래 와서 자라고 있는 고구마도 지난주에 비해서 더 자랐다.

'그래 그래! 너도 잘 자라렴. 어디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이라면 뿌리내리고 살아보자. 정 붙이고 살면 그곳이 자기 고향이라고 하지 않니. 잘 자라렴.'


김매기를 하다 보니 무잎 위에 까만 벌레가 있다.

‘이것을 어찌해야 하지? 그냥 두자니 무잎을 다 먹을 것 같고, 죽이자니 살생은 싫고...’

생각 끝에 사람이 지나다니는 고랑에 땅을 파고 묻었다. ‘네가 이래도 살아난다면 어쩔 수 없지.’


올 가을 배추와 무는 다른해와 비교하여 아직까지는 건강하다. 봄에도 그렇지만 예전에 배추와 무가 어릴 때조차 벌레를 먹어서 애를 먹었다. 해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추와 무를 키웠었다. 올해는 늦게 심었으니 병충해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병충해라도 없어야 채소가 제 구실을 할 것 같다.


마무리 작업은 물 주기다. 다음 주엔 비 소식이 없어서 더 꼼꼼히 물을 줬다. 이번주는 일이 많지 않아서 일찍 끝났다. 장화도 깨끗했다.

다음 주엔 날씨도 화창하고 기온도 올라간다니 기대해본다. 채소들이 아직 어리니 햇볕이 잘 들어야 튼튼하게 자랄 거다. 주말농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날씨다. 햇볕도 알맞아야 하고 비도 적당해야 한다. 기온도 너무 더워도 힘들고 추워도 힘들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날씨에 약간의 인간의 노동력이라는 양념을 보태는 것일 뿐이다.

농약이나 멀칭을 사용하지 않는 주말농장은 오로지 자연의 힘과 인간의 노동만으로 얻어지는 수확이다. 인간의 노동력에 비해 자연의 힘은 강력하다. 이른 봄에 가물고 추운 날씨는 작물의 싹 틔우기나 생육을 방해하고, 한 여름엔 뜨거운 뙤약볕, 장마 혹은 가뭄으로 작물이 자라지 않는다. 가을엔 서늘한 기온과 이른 서리나 추위로 인해서 작물의 수확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가끔은 겸손해지고 겸허해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세상은 나로 하여금 꿈꾸게 하지만, 자연은 나로 하여금 만족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은행나무는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며 오늘도 조금씩 가을로 물들어가고 있다.


주말농장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잠깐 들렀다. 어느새 구름은 가벼워졌고 파란 가을 하늘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완전히 가을로 물들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조금씩 가을 색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남한산성 근처 순두부집에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했다. 순두부가 어찌나 맛이 좋은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맛집이었다. 직접 두부 작업을 하는 가게인지 돌아가는 손님들이 콩비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덤으로 주는 콩비지까지 알차게 챙겨서 돌아왔다.

주말농장 주변 유원지와 맛집 탐방은 주말농장의 또 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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