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함께 쓰기 프로젝트
함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지 넉 달 째다.
오픈카톡방 게시판에는 매주 한편씩 쓸 자서전 내용과 책은 무엇을 읽고 참조할 것인지 등을 공지한다. 둘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는 온라인으로 만나서 자서전 쓰기 진행사항을 점검하고 자서전 한편씩을 공유한다.
처음 자서전을 쓰겠다고 한 사람은 여덟 명이었는데 들락날락하는 사람도 생기고 속도에서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행복숲님은 50대까지 썼고, 달팽이천사님은 40대까지 썼다. 혜령 님은 유아기까지 쓰고 바빠서 못쓰기도 하고 쓰고 싶지 않아서 못쓰고 있다. 어게인채님은 처음부터 자서전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는데 여전히 고민 중이다. 메모식으로 적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도 별로 없다고 했다. 니아 님은 토요일마다 일정이 있어서 지난번부터 듣방으로 참석했는데, 더디 가더라도 끝까지 하고 싶다고 했다. 북수다 님은 버스로 이동할 때 조금씩 적고 있다. 희숙 님은 열심히 쓰겠다고 했으나 한번 참석한 이후로 오지 않고 있다.
한편씩 나눈 자서전에서는 서로 다른 삶을 공유하면서 추억의 드라마를 보는 듯 재미가 있다. 비슷한 경험에 공감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사실을 알기도 한다.
행복숲님은 외할아버지가 원산에서 철공장을 운영할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일본인 애인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둘째어머니 밑에서 이복동생을 돌보며 살았다고 한다. 행복숲님은 유치원을 다닐 정도로 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달팽이천사님은 김수로왕시절 허황옥 후손으로 아버지가 사범대학 수학선생님이었으며 집안이 부자였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을 못 낳았다고 삼일 만에 일을 나가야 했고, 할머니로부터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달팽이천사님이 필자 중학교 선배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반가웠고, 가문이 필자의 시어머니와 같은 가문이었다. 혜령 님은 부모님이 딸을 잃어서 본인은 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태몽은 복숭아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돌아오는 꿈이었다고 한다. 날 때부터 예뻐서 별명이 춘향이. 지금도 어여쁜 혜령 님^**^ 울릉도에서 살았는데 뱃멀미가 심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 어게인채님은 반야홀에 살던 어린 시절 친구와 살구꽃잎을 따며 소꿉놀이를 하다가 살구꽃잎을 다 따서 할아버지에게 혼났다고 한다. 북수다님은 초등학교 때 물놀이 중에 바다에 빠져서 죽을 뻔했다고 한다. 물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과거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많은 추억이 있고, 할 이야기가 많아도 직접 쓰지 않으면 자서전을 손에 쥐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야심 차게 시작했던 것과 달리 자서전 쓰기가 만만치 않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고 있다. 시간적 여유도 필요하지만 과거를 돌아볼 넉넉한 마음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후루룩 쓰면 간단하게라도 쓸 수 있는데 흐름을 놓치거나 쉬어가면 다시 잡고 쓰기가 쉽지 않다.
자서전 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와 만나는 시간이다. 과거와 현재의 내가 대화하는 시간이다. 에릭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자서전 쓰기는 역사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과정이다. 역사라는 것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듯 자전적 경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일이지만 가끔은 멍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멈추어야 한다. 멈추어서 과거의 나와 조우하며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즐겁고 신나는 일에는 현재의 나도 기쁘고 행복하지만 슬프고 외롭고 아렸던 나를 만나면 지금의 나도 아프다. 아픈 나를 만나면 안아주고 다독여주어야 한다.
자서전 쓰기는 나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개인을 사회와 분리할 수 없듯이 추억 속에는 그때 그 시절의 어머니 아버지도 만나고, 언니 오빠도 보인다. 친구나 선생님과도 해우한다. 내가 어리석게 했던 행동이나 말에는 후회가 밀려오고, 그들에게 받았던 상처나 아픔에는 여전히 통증이 느껴진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에게도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또 때로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때 그 시절 그곳에서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흐를 때면 즐겁기도 하지만 쓸쓸하기도 하다. 자서전을 쓰는 것이 그저 담담할 수 없어서 자꾸 멈추어서 보게 된다. 가끔은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역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하는 것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라는 말처럼 과거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자신이다.
자서전을 쓰면서 무엇보다 열심히 살아낸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시간을 갖는다.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만나 위로하고 격려한다. '고생했어', '열심히 살았네', '많이 힘들었지' 토닥토닥.
현재의 나가 과거의 그들을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는 시간이다. 고단했던 삶일지라도 쉼 없이 달려온 그들에게 고마움도 전한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고, 부끄러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넨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견뎠나요. 나라면 못 견디고 도망갔을 거예요. 수고하셨어요.",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고맙습니다."
현재의 나가 현재의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하고 전진하는 길을 만든다. 자서전 쓰기는 현재의 내가 과거와 만나고 또 다른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길이다.
행복숲님은 자서전 쓰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서전 쓰기 시작하기 잘한 것 같아요. 자서전을 쓰면서 여러 번 울기도 했는데 마음의 치유가 되더라구요. 일하느라 바빠서 돌봐주지 못한 아들이 잘 커줘서 고맙다고 아들에게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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