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제목을 보고는 잉? 어떻게 슬픔이 자랑이 될 수가 있다는 거지?
고개를 꺄우뚱할 수 밖에 없었다.
시를 찬찬히 읽어나가면서 저 한 문장에 바로 설득 당해버렸고
나의 슬픔이, 눈물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말 같아서 위로가 되기도 했던 시이다.
어릴 때부터 눈물은 내게 있어 모든 감정에 대한 표현방식이었다. 아빠를 보기만 해도 좋아서 울고 사소한 일에도 눈물을 터뜨리는 탓에 그만 좀 울라며 혼난 적도 많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우는 게 뭐 그렇게 혼날 일인지 억울하기도 하다. 나는 남들보다 민감함이라는 놈을 좀 더 많이 가지고 태어난 듯 싶다. 그래서인지 한 때는 너무 감정적인 내가 싫기도 했고 슬픔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 적도 있었다.
조금 더 어른이 되어보니 많은 눈물을 흘렸던 나의 슬픔이 자랑이 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픔을 느껴봤기에 다른 누군가의 슬픔에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 거니까. 매번 주책스럽다는 생각에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슬픔을 공유하는 게 감정이 소모된다는 느낌보다는 그 감정을 온전히 느낄 기회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월 전에 미술치유와 관련해서 처음 보는 분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조금 어린 친구들과 함께 각자의 힘듦, 슬픔, 괴로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내가 그 나이 때에 고민하고 느꼈던 것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들으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끄덕끄덕 열심히 듣다가 마지막에 돌아가면서 서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왔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흘러나오면서 뭔가 그들의 감정이 콕 들어오는 듯 했다. 그 친구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어서 돌아와서도 얼마나 이불킥을 했던지.
그래도 난 이런 헤픈 눈물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눈물이 많은 일이 자랑이 될 수 있으니까.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가 수록된 시집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