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 처가, 단순한 단어의 차이가 아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남편의 식구들도 내 식구들처럼 대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시댁의 '시'자만 들어간 상황이 발생하면 땀이 삐질난다.
시작은 결혼의 서막을 알리는 상견례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이상하게 상견례 분위기는 우리 부모님이 숙이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딱 꼬집을 순 없지만, 뭐랄까 시부모님은 당당한데 우리 부모님은 시부모님의 분위기를 살핀달까. 엄마가 하도 상견례를 신경 쓰길래,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그냥 박차고 나가버리라고 당부했다. 그만큼 우리 부모님이 딸 가진 죄인의 모습으로 앉아있을 것 같아 염려되는 마음에 더 큰소리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상견례는 그렇게 끝났다. 결혼 진행도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내가 책 잡힐까 무던히 애를 썼다. 생략하기로 한 것도 나중에 욕먹는다며 혼자 고집스럽게 진행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화를 내도 엄마는 묵묵히 혼자 다 해내셨다. 그리고 시댁 식구들은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시댁과 처가, 그 단어의 차이를 마음으로 실감한 순간들이었다. 뭘 해줘도 가만히 있는 시댁에 서운했다. 결혼 준비 과정을 누리기만 하는 것 처럼 보여 속상했다, 그리고 나를 결혼시키면서 자꾸만 시댁의 눈치를 보는 엄마의 태도가 싫었다. 엄마를 이해 못하는건 아니다. 엄마도 그 시대의 피해자니까. '높은 시댁, 낮은 처가' 문화 속에서 살아온 분이니까.
그래서일까. 그 뒤로는 시댁 식구들에게 전화 한 통 하는 것도 어렵고 혹시나 실수할까 만날 때면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계속 다시 생각난다. 나는 시댁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건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모든 상황에 화가 나고 그냥 순응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댁 얘기만 나오면 예민하다. 요즘은 어딜 가도 시댁에 예민한 사람들을 자주 본다. 시댁이 잘못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나처럼 그냥 시댁에 예민한 사람이 꽤 많다. 심지어 비혼인 사람들도 시댁 얘기에 학을 떼는 걸 봤다. 다들 나 같은 마음이 아닐까? 싫은 건 시댁의 존재가 아니라 그 집단이 나보다 더 높다는 문화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내 자아와의 갈등 속에서 나오는 마음이 말이다.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요상한 문화인데, 남편이나 시댁은 이걸 바꿀 마음이 없을 거다. 문제의식은 항상 불만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