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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Han Feb 09. 2021

괴로운 사람이 명상을 하는 이유

명상은 괴로움을 해결하는 데 특화된 하나의 기법이다


들어가며

이미 명상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나는, 

요즘 나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모든 주변 사람들에게 

명상을 알아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하는것 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명상은 누가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사람이라면 모두 해야 합니다!' 라는 답을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대체 어떤 사람이 명상을 해야 하는걸까?



명상은 괴로운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살면서 괴로울 일은 참 많다.

예상치도 못한 전지구적 재난이 1년 이상 이어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나와 같은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공간에서 

나만 유독 그 일에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집에 와서는 집에 있는 어떤 것이나 사람들 때문에 괴로울 수도 있고,

내 주변에 모든 것이 맘에 들지만 딱 하나가 이상하게 불편할 수도 있다.

Photo by Francisco  Moreno on Unsplash

당신이 괴로운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자.


먼저, 나는 괴롭나?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리고 나서 무슨 생각이 드는지 보면 되는데, 

    - 에이, 이 정도는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 세상에 만사 괴롭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괴로운 사람이다.


'괴롭지만, 어쩌구 저쩌구 하다' 라고 하는 사람은

이미 괴로움과 씨름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 생각에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괴로움을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 난 모르겠는데? 

    - 괴로운게 뭔지 잘 모르겠어

처럼 말이다.

(그리고 세상 천지에 이런 사람이 대체 어디 있는가?!)




내가 괴로운지 판단하는 기준은 

주변 사람이 이것으로 괴로움을 느끼는지도 아니고,

괴로움의 원인이 사소한지, 혹은 엄청난 것인지의 여부 또한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당신이 지금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건 괴로운 것이다.

Photo by Etty Fidele on Unsplash

만약 당신이 괴로운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강력하게 명상에 대해 알아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불교 명상 : 괴로움(苦)에 대한 강력한 처방


명상은 그 종류와 접근방식이 다양한데,

불교 명상은 전통 있고도 체계적인 방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배운 바에 따르면,

기독교는 사랑에 대한 종교이고, 불교는 괴로움에 대한 종교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는 항상 '사랑하라'는 말로 가득 차 있다.

원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죄진 자도 사랑하라는 식이다.


불교는, 괴로움이 모든 내러티브의 중심이다.

인생은 괴로움 투성이고, 욕심내는 것, 어리석은 것도 괴로움이고, 생각하는 것 조차 괴로움이며, 

괴로움을 끝내려면 이 세상을 벗어나(열반)야 한다고 말한다.


애초에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싯다르타가, 

그동안 싯다르타에게 숨겨왔던 세상의 괴로움을 

성년이 되어서야 갑작스레 접하면서

그 때 부터 괴로움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것은

위인전만 읽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출처 불교신문

불교가 싯다르타가 살면서 고민한 것들의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라면 

불교에서 제안하는 명상이 괴로움에 대한 강력한 솔루션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크게 무리가 없는 추론이지 않을까?



괴로움을 해결하고 싶다면?


위에서 말했듯, 대부분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만약, 여기 어떤 사람이 자기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싶다고 치자.

그 사람이 기독교를 찾아가면, 

기독교는 그 사람에게 '사랑하면 괴로움이 없어질 것이다' 라는 식의 말을 할 것이다.

왜? 기독교는 사랑에 대한 종교니까.

('헌금을 하라'든지 '나를 믿으라'든지 하는 대답은 전혀 기독교적인 대답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듣고 어쩌면 깨달음을 얻고 괴로움이 사라지게 되면서

그 결과 기독교도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A를 해결하기 위해 B를 탐구하는 직관적이지 못한 방식은 

아무래도 좋은 솔루션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그래서 더 괴로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쩌라고'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어이없거나 화나는 감정이 들며 더 괴로워질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어이없음이나 해결되지 않는 괴로움의 증폭을 

기독교의 탓으로 돌리고자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배가 아픈 데 치과에 간 사람이 여전히 배가 아프다고 해서

그것이 치과의사의 탓은 아니지 않은가?


괴로운 사람이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에 자신의 자원을 투자하고자 한다면,

불교적 관점을 들여다 보는 것이 괴로움 해결에 더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천지 만물을 모두 괴로움으로 보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면

남들에 비해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도 더 높을 것이니까.


그렇다면 불교 명상이 제안하는 괴로움 해결법은 무엇일까?



불교 명상이 제안하는 두 가지 괴로움 해결법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 번째는 마인드셋을 안내하는 것이다.

세상을 (괴로움과 관련하여) 어떤 방식으로 바라볼 것인가?

괴로운 개인은 불교가 제안하는 관점을 수용하면서 괴로움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점을 수용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며, 당장의 괴로움은 해결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당장 할 수 있는 행동들을 알려주는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하고, 판단을 중지하는 행동들 말이다.


흔히 '명상', 정확히는 '불교 명상' 하면 생각나는 이런 행동들은, 

물론 괴로움을 조절하는 것 이상의 이유나 의미, 맥락를 가지고 있지만,

괴로운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맥락 구조 없이

그저 '명상'이라는 행동들을 따라하기만 해도

눈 앞의 괴로움과 어떻게든 씨름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갖게 될 수 있다.



마치며

당신이 괴로운 사람이라면, 당신은 명상을 해야 할 '누구'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당신이 궁금해 할 만한 것은,

언제, 어디서 명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일 것이다.


'명상을 언제 하는가'에 대한 글이 올라오기 전, 

브런치에 '명상'을 한번 검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목차

명상은 누가 하는가 - 현재 글

명상은 언제 하는가 (1)

명상은 언제 하는가 (2)

명상은 어디서 하는가

명상은 무엇인가 (1)

명상은 무엇인가 (2)

명상은 어떻게 하는가

명상은 왜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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