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나는 나의 향 후 거취를 논의하고 싶었다.
당연히 내 의견을 존중하나 불허한다는 답이었다. 내가 TRW에서 하는 업무는 몇 주간의 교육을 받으면 누구도 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이었다. 굳이 비싼 월급을 지불하면서 나를 고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내 의견은 묵살되었다.
TRW 복귀 후 또다시 무료한 일상과 더불어 공무원으로서의 내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TRW의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이런 마음과 함께 업무적 결과를 펜타곤에 보고하였는지 2주간의 휴가 지시가 내려졌고 아울러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일정도 잡혀 있었다.
의사와의 만남에서 의사는 내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어떤 것이 내게 좋을지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난 2주 동안 멕시코에 있는 독일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멕시코로 향하였다. 친구에게 이런저런 상황과 의사의 추천 내용 얘기를 하자 내게 무인도 체험을 해보라고 하였다. 말 그대로 조그마한 섬에 나 혼자 머무는 것으로 핸드폰, 페이저와 같은 기계류를 가져갈 수 없고 심지어 시계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그런 패키지였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한마디로 홀로 멍하니 있는 그런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조그만 배를 타고 한 시간쯤 가자 자그마한 섬이 있었고 가이드는 물과 음식 그리고 유사시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를 남기고 가버렸다.
나는 그 무인도에서 오랫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틀 후 나는 가이드가 주고 간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눌러 그 섬에서 나가고 싶다고 하였다.
내 입장에서 대화를 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 나란 인간에게 그토록 고독함과 불안감을 안겨줄지 상상할 수 없었다. 십여 년 전 호주의 어느 지하에서 단독적인 생활을 했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외로움은 나를 불안하게 하였고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있는 세상 속으로 나를 데려가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별것이 아니었었던 시간들도 있었겠지만 어떤 때에는 나에게 큰 사건이었고 어느 때에는 내 인생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던 순간들을 떠 올리며 미국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될 수 없기에 나의 미국 생활은 이후에도 일 년간 지속되었다.
나의 인생 3막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한국 생활 아닌 고국 생활을 하게되었다.
데이터 가격이 석유 가격을 넘어섰다.
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반발로 인하여 바네사르 조약이 발표되었고 (Wassenaar Arrangement-네덜란드) 그런 역사의 현장 속에 있었던 나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미중 갈등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양성하고 있다.
아니 미중 갈등으로 증폭되었을 뿐 그 형태가 어떠한 모습이든 미국은 지속할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한 짓을 알기에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는 상대를 의심한다. 자기와 같은 행위를 할 것으로...
https://www.voakorea.com/a/world_us_us-chinese-students/6031727.html
https://m.segye.com/ampView/20180430001613
이 글을 내가 대신 쓰게 된 것은 그가 한국 생활에서 또한 깊은 시련과 어려움 그리고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인생의 한 막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일기장 같은 글을 써보길 권했다.
각자 나름의 인생이 있겠지만, 그가 경험했던 미국과 한국에서의 시련과 경험은 일반인이 범접하기에는 너무도 큰 일들이 많았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이 글이 마지막 해가 되는 1996년 이후 2년이 지난 후이다.
그의 글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는 나에게 H와 같은 존재...
난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람이 있다면
그와 그의 아들과 함께 H 묘지를 방문하고 H의 아내 J와 아들 M을 만나러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