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시지요. 도깨비가 말했다.
도깨비가 말했다고, 누가 말했다고, 이제는 헷갈린다.
언젠가, 한밤중에 길가에 버려진 무심한 물웅덩이를 들여다보다가 내 입이 중얼거린 말일 수도 있다.
달은 그 물웅덩이에 떠 있었다.
버려진 껍질 같았다.
길가에 버려진 것들이 대체로 그렇듯 쉽게 발에 차였다.
물이 튀었다.
신발이 젖었다.
그때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내 몸 어디에도 뜨겁게 번지는 게 없어서.
신발 속 양말에 스며드는 찬 물이 내 체온을 뺏어가는 게 오히려 좋았다.
나는 늘 뭘 삼킨다.
말도, 마음도, 부끄러운 꿈 같은 것도.
삼킨다는 건 없애는 게 아니라 속에 들여앉히는 일이라는 걸 오래 걸려 알았다.
타지 않고 남은 것들이 내 안에서 썩기도 한다는 걸, 다들 언젠가는 알게 되지만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차가운 불은 그런 거였다.
마시지 않으면 삼키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나는 누가 준 적도 없는 달을 숟가락으로 떠서 찬물에 풀어 삼킨다.
한 모금 넘길 때마다 혀끝이 시리고 목구멍이 서걱거린다.
어떤 밤엔 토하고 싶어도 다시 삼킨다.
밖으로 내보내면 다시 데워질까 봐, 조금이라도 타버릴까 봐.
누군가는 나를 무덤 같다고 했다.
내 입을, 눈을, 배를, 다 무덤 같다고.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은 조금 안다.
무덤은 타지 않는다.
타올라야 무덤이 아니다.
무덤이 되지 않으려면 불이 있어야 한다.
차갑게라도.
그래서 나는 물웅덩이를 들여다보고, 달을 긁어먹고, 목구멍으로 내리고 꺼지지 않는 걸 확인한다.
그게 살았다는 증거 같아서.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은 말들이 있다.
시끄럽게 울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었다고.
울다가 길바닥에 쓰러져서 모래바닥에 입술이 닿았다고.
피비린내가 났고 그때 그 피가 차가웠다고.
피가 식으면 무덤이 된다고 배웠는데 나는 그때조차 완전히 식지 않았다.
그게 아직도 남아 있다.
나는 자주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산다.
새벽 세 시, 아무도 없는 계산대 앞, 손끝이 추워서 포장지를 뜯다가 비닐이 찢어지지 않아 욕을 내뱉는다.
그런 순간에 내 안의 도깨비가 웃는다.
그 애는 웃을 때 입을 가리지 않는다.
이빨을 다 보여준다.
더럽게 웃는다.
그게 좋다.
나 혼자 웃는 것보다 낫다.
차가운 불은 오래 간다.
대신 아무도 몰라준다.
뜨겁게 타오르는 건 누가 봐준다.
박수도 치고, 불꽃놀이도 한다.
다 타고 나면 그을음만 남는다.
나는 그을음도 싫다.
흔적은 쉽사리 들킨다.
그래서 그냥 식어 있는 게 낫다.
살아 있다고 우기려면 어딘가는 조금씩 타닥타닥 소리를 내야 한다.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다시 숨을 삼킨다.
도깨비는 없다.
그 애는 언젠가 사라졌다.
내가 만든 말이었다.
내가 나한테 한 말이었다.
아무도 대신 마셔주지 않는 밤에 내 입 안에서 부글부글 말들이 끓어오를 때 그걸 다 삼켜버리라고, 다시는 꺼내지 말라고, 다짐처럼 꿀꺽 삼키던 말.
그래서 아직도 남았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삼킨 것들이 나를 밀어내고 밖으로 나오면 어떡하지.
토사물처럼 쏟아져서 길가에 버려진 웅덩이처럼 고이면 어떡하지.
그때는 누가 발로 차줄까.
누가 내 안의 달을 밟아줄까.
아무도 모를 거다.
그래도 괜찮다.
차가운 불은 아무도 안 본다.
아무도 안 보는 게 좋다.
그렇게라도 남아 있으면 된다.
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십니다.
그리고 다시는 꺼내지 않습니다.
꺼내면 사라지니까.
***
오늘 폰을 바꾸고 나서 이런 저런 설정을 바꾸고 있는데
예전에 책을 보면서 적어 놓았던 한 문장이 눈에 보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기억해 보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한 문장
그 문장을 돌이켜 살을 붙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