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자주 멈추게 된다.
사람들이 무심히 걷는 인도 위에서, 지하철역 입구 앞에서,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들 속에서.
멈추는 데에는 큰 이유가 없다.
몸이 피곤한 것도 아니고 무엇을 놓고 온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걸어야 할 속도를 정확히 가늠하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는 것뿐이다.
한 발을 떼기까지의 시간이 늘어났고 한 마디를 하기까지 여러 문장을 속으로 되뇌게 된다.
그건 아주 조용한 방식의 지연이었다.
누군가에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하지만 나 자신에겐 부정할 수 없는.
어느 날, 우연히 옥상에 올라갔다.
그곳은 의외로 사람이 많지 않았고 도시의 낮은 소음들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공기 중에 특별한 감정이 섞여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그건 외로움이라기보단 조용한 자기 점검에 가까웠다.
그 순간, 아주 오래전 어떤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넌 늘 반 박자 느리게 걷지."
그 말이 처음에는 내게 상처처럼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는 나를 꽤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걷는지를 기억하는 사람.
그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안도감이 생겼다.
기억이란 건 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의도적으로 떠올린 것보다 우연히 다가온 것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그날 이후, 도시의 특정한 순간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횡단보도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릴 때, 누군가의 뒷모습이 내게 겹쳐 보일 때.
나는 내가 놓친 말들을 더듬었다.
그 말들은 때때로 문장보다 짧았고 때때로 아무 말도 아니었다.
예컨대 이런 말.
“너, 지금도 예전이랑 똑같이 걷는다.”
그 말이 내 안에서 며칠 동안 울렸다.
그건 판단도 칭찬도 아니었고 다만 하나의 관찰이었지만 나는 그 안에서 어딘가 잊힌 내 모습을 발견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 누군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
그건, 말해지지 않았기에 더 조용히 오래 남았다.
나는 이제 가끔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문장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누군가의 늦은 걸음을 함께 멈춰준 적.
한참이 지나서야 울림이 닿는 문장이었던 적.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러고 싶다.
이 도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기 속도를 미워하지 않도록 기다리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고 나는 여전히 느리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도 누군가와 조용히 닿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오늘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