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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기 위해 필요한 여유

by 참지않긔

어제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벌어진 사건을 방송으로 봤습니다.


50대 부부가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있던 중 한 젊은 남성이 갑자기 나타나 남편에게 날아차기를 한 사건이죠.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 남성은 마치 자신이 자전거 도로의 주인인 양 그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협한 것입니다.
피해자는 그대로 자전거에서 떨어졌고 쇄골이 부러져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그 남성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천천히 자리를 떠났고 심지어 여러 명에게 비슷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사건은 연이어 벌어졌고 피해자는 점점 늘어났죠.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 상황이 매우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한강 자전거 도로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의 장소인데 그 남성은 마치 그 도로가 자신의 것인 양 행동했습니다.
그가 자전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고 느꼈다면 차라리 비키거나 말을 걸었어야 할 텐데 그는 폭력으로 대응했죠.
'저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참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한 감정이 피어르더군요.

'나도 저런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내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라고 그런 순간들이 없었겠습니까.

길을 걸을 때 종종 앞서 걷는 사람이 나보다 너무 느리게 움직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괜히 짜증이 나서 그 사람을 빠르게 지나친 적도 있었죠.

이유는 단순합니다.
내가 더 빨리 가야 하니까.
그리고 나중에 돌아보면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속도로 조용히 걷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도 그 속도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요.




내가 길을 걷다가 느리게 걷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그 순간 어쩌면 나는 내 속도가 세상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사람이 천천히 걸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의 필요만을 앞세우며 그 사람을 내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그 한강 사건의 가해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나는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죠.
그러나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밀어내고 나의 속도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는 점에서 그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런 이기심은 생각보다 일상 속에서 많이 드러납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릴 때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해서 식당의 상황이나 직원의 어려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불평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내가 원할 때 바로 음식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처럼 우리는 모두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서두를 땐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여유를 원할 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한강 사건의 가해자 역시 그 순간 자전거가 자신을 방해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자전거가 다가오는 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그 위협을 없애려는 행동을 취한 것이겠죠.
그에게는 그 순간 자신의 안전이 가장 중요했고 자전거가 누구에게 속한 것이든 상관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길을 걸을 때 천천히 가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그 사람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내 모습.
그 안에 한강 사건의 가해자의 모습이 담겨 있었던 거죠.




이제 나는 길을 걷다가 앞서 가는 사람이 느리게 걸으면 잠시 마음을 가다듬으려 합니다.
그 사람도 나와는 다른 리듬으로 나와는 다른 이유로 그 속도로 걷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려 노력합니다.
나의 속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의 속도와 리듬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한강 자전거 도로에서 벌어진 그 사건은 단순한 폭력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얼마나 자주 나의 속도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을까요?




이제부터는 조금 더 천천히 걸어가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리듬도 존중하는 연습을 해보려 합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느리게 걸을 때 그걸 방해로 느끼지 않고 그들의 속도를 인정해주면서 말이죠.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요한 자세라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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