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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Dec 15. 2020

가끔은 눈 감아 줄게

아예 감아버리겠다는 건 아니야! 절대!!

  어릴 때 엄마 눈에 안 보이면 거짓말을 하고는 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말의 실체가 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안 그런 척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엄마는 그런 내 눈을 모르는 척하고 감아준 적이 많았다.


  한 번은 교복 치마에 예쁜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나의 신체 비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거저 줘도 신지 않을 테지만. 어린 시절엔 남들이 해서 예뻐 보이면 나도 하고 싶었다.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봐도 엄마가 사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아주 뻔뻔하게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엄마, 학교에서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고 오래." 엄마는 기가 찬 얼굴로 내게 다시 물으셨지만, 나의 뻔뻔하고 당당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짐짓 눈에 힘도 주었더랬다. 그 날 엄마는 헛웃음을 지으며 긴 양말을 사다 주셨다. 그놈의 긴 양말을 한 두 번 신었을까. 다른 아이들이 신었을 때는 그렇게 예뻐 보이더니, 정작 내가 신으니 더 땅딸한 난쟁이 같았다. 결국 그 양말을 집구석에 던져버렸다.


  나는 슬금슬금 엄마 눈 속이는 짓을 잘했다. 엄마가 먹지 말라는 것도 입에 쏙 넣고 안 먹은 척했고, 보지 말라는 TV 프로그램도 슬쩍 보고 안 본 척했다. PC가 대중화되어서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을 때면 전화선을 꽂아서 한 시간 넘게 사용했다. 밖에 나가셔서 집으로 전화해도, 계속 통화 중이었다는 엄마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 거짓말은 얼마 안 가서 전화 고지서로 들통났고, 나는 엄마의 매서운 매와 만나야 했다. 엄마는 "거짓말이 제일 나쁜 거야!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거짓말은 안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수없이 반복했던 작은 거짓말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친구의 할머니 집으로 여행을 갈 작당모의를 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우리끼리'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야심 찬 포부였다. 날짜도 정하고, 친구의 할머니께 허락도 구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허락도 받아내었다. 그때 생각하면 외박은 절대 안 되는 우리 집에서 어떻게 허락했는지 신기하다. 아마 그 또한 나의 거짓말이었을 거다. 학교에서 임원단 수련회를 간다고 했을 거다. 사실 학교에서 매해마다 임원을 데리고 수련회에 했었다. 다만 나는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고, 친구들과의 여행을 작당했을 뿐이다. 모든 준비가 척척 마쳐질 때쯤, 거대한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돈이 없었다.


  알바를 해야겠다, 엄마에게 솔직히 말하고 돈을 달라고 해야겠다 등 친구들끼리 이야기가 분분했다. 나는 그 어디에도 동조할 수 없었다. 알바를 하러 가기에는 너무 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엄마에게 솔직히 말하자니, 애초에 여행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을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 생애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기로 했다. 매달 학교에 내야 하는 급식비를 횡령하기로 한 것이다. 담임 선생님께 이번 달은 점심 저녁 모두 급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씀드리고, 엄마에게는 그 돈을 고스란히 받아 챙겼다. 다행히 학교에 매점이 있었기 때문에, 때때로 빵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횡령한 돈으로 여행을 떠났다.


  결혼한 뒤에 엄마와 긴 양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넌 진짜 어이가 없었어. 어떤 학교에서 그런 양말을 신고 등교하라고 그러니?"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엄마가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줬어? 왜 신게 해 줬어?" 잘못한 일을 들킨 기분은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동일했다. 다급하고 부끄럽고 민망했다. 엄마는 그런 내게 "그냥, 그냥 봐준 거지. 적당히 봐주고 넘어가야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급식비 횡령이라는 어마어마한 일도 알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손바닥 위에서 거짓말하고, 속였다고 기뻐하고, 기쁨 가운데 충만히 거했다.


  엄마는 나의 횡령죄를 모른척하고, 소소한 거짓말들을 일일이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거짓말하는 나를 지켜보다가 엄마가 가진 '나름의 선'을 넘지 않도록 지도하셨다. 어느 날 했던 거짓말은 호되게 혼이 났고, 다른 날 했던 거짓말은 그냥 넘어가 주셨다. 엄마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기준은 엄마의 의도대로 되긴 했다. 모든 거짓말을 모른 척하지 않으셨기에, 거짓말하면 혼난다는 사실을 배웠다. 때때로 속이는 나를 모른 척해주셨기에, 숨통이 트이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거짓말이 나쁜 거라는 걸 알지만, 한 번도 안 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적당히 거짓말하고 속이는 즐거움도 누렸지만 결국 엄마의 손바닥 위였다. 엄마는 나의 모든 거짓말과 행동에 민감하지 않으셨다. 민감해야 한다고 느낄 때, 예민한 촉수를 발휘하셨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 정도와 기술을 모르겠다. 엄마가 된 지 일곱 해가 지나 곧 학부모가 될 텐데, 아직도 헤맨다. 아이의 모든 잘못과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아이도 나도 미쳐버릴지 모를 일인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반응할 수 없을 텐데. 민감할 때 민감하게 반응하고, 둔감할 때 둔감하게 모른 척하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 간섭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눈감기'말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눈감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전히 그때와 방법을 아는 것이 어렵다. 잘못을 눈 감아 주었다가 그대로 커버리면 어쩌지? 거짓말을 참고 모른 척했다가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면 어쩌지? 잘못을 잘못인 줄 모르고 자라면 어쩌지? 실은 온갖 불안과 염려가 내 발목을 잡는다. 그 '적당함의 선'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것이 어렵다. 적당히 넘어가 주는 것이 아이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못을 한 두 번 봐주는 것이 신뢰나 믿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육아를 하면서 필요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나의 불안과 염려를 넘어서서, '자식'이니까 가능해야 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가까이에서 관계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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