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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Apr 26. 2021

멀리 있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여태 몰랐구나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오롯이 쉴 수 있을까? 인터넷, 전화가 안 되는 그런 곳에 간다면 온전히 쉼을 누릴 수 있을까? 이번 생에 휴식이라는 건, 진짜 존재하는 걸까?


  육아맘이 되고 나니 '휴식'에 대한 갈망이 어마어마해졌다.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누릴 수 있는 온전한 '휴가', '휴식'이라는 건 없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 때문인지, 틈만 나면 당당하게 남편에게 '휴식의 권리'를 내밀었다. 마음이 뾰로통한 날, 나 자신이 추레하게 느껴지는 날, 20대의 젊음이 그리운 날, 수없는 나날 동안 당연한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럴 때면 나는 우위에 섰고, 남편은 마냥 미안해했다. 그에게도 그놈의 '휴식'이 없긴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어찌 보면 애초에 '휴식'을 누리기 어려운 사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쉼을 누리는 것이 어렵다.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완벽해야 하는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눈 앞에 보이는 일들을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지랄 맞은 성격을 가졌다. '조금만 쉬었다가 하자.'라는 생각보다 '어차피 조금 이따가 할 일인데, 지금 해치워야겠다.'가 나를 대변한다. 할 일을 뒤로 미루지 못해, 스스로를 들들 볶는 피곤한 성격이다. 혼자만 피곤해하면 다행인데, 불똥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튀어 오른다.


  집을 치우다가 문득 제자리에 있지 않는 물건을 보고 혐의자를 물색한다. 발본색원해서 책임을 묻고 물건은 원위치에 돌아간다. 하지만 한바탕 대거리를 치르고 여기저기 흩어진 마음이 문제다. 돌아올 줄 모른 마음은 마음 구석구석을 널뛰고, 이번 생엔 없을 것만 같은 '휴식'을 갈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 덕분에 최근 다리를 다치고도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모두가 납득이 될만한, 너무나 타당한 '휴가'가 아닌가.


  병원에서 전치 3주의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아 실실 배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니 출근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은 하루뿐이었다. 하루가 지났을 뿐, 나는 육아로 출근을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들 등교 준비를 마치고, 매끼 식사를 차리고 치웠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장난감을 치우고, 먼지를 빨아들였다. 어쩐지 출근할 때보다 몸이 더 고단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타당한 '휴가'일지라도, 정작 내겐 그렇지 않았다. 다리를 다쳤다고는 하나, 아예 걸을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앞에 보이는 일을 당장 해야 하는' 지랄병은 여전했다.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해야  일들을 조금씩 해치웠다. 빨래, 설거지, 음식, 아이들과 놀아주기,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급기야 아이들의 운동화를 빨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니  안에 품었던 '휴식에 대한 갈망' 정의가 뭔지 다시 생각해야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중간중간 나의 피곤함은 고스란히 남편에게로 향했다. 처음엔 "아니, 제발 그냥 쉬라니까."라고 답답해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쉬게 하려면, 처음부터 당신이 하면 되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응수했으니 말이다. 그와 나의 생활방식, 일의 순서, 중요도가 완벽하게 다르다는 인정이 없었다. 내겐 '당장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바득바득 고집을 부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그토록 주장했던 '휴식'이 애매모호해졌다. 나는 애초에 '휴식'을 할 수 없는 인간인가?


  그날도 변함없이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탈탈 털어 널고선, 가만히 앉아 한참 창 밖을 내다보았다. 햇빛에 나뭇잎이 어찌나 반짝이는지,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어찌나 싱그럽게 보이던지. 두 팔 벌려 달려오는 아이들을 온몸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들과 한바탕 뛰어놀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저녁식사 후 남편과 함께 동네 산책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개운할까. 냉장고 파먹기는 그만하고, 식재료를 사다가 마음껏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면. 그제야 깨달았다.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날이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온전한 몸으로 보통의 하루를,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휴식'인지 말이다. 아이들을 번쩍 안아 올리고, 손을 잡고 꽃이 핀 광경을 보고, 하룻사이 뒤바뀐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는 행복이 일상에 있었다. 다친 다리로 인해 일상의 삶을 잃어버리고 나니, 아프지 않고 보통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이었다. 신기루를 좇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일상의 삶이 돌보지 않았으니,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기대가 커져만 갔다. 주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갈망이 커질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초라해 보였다. 거창할 것 없는 보통의 삶,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 가운데 이미 '휴식'이 있었다.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 너를 안고 까르르 한바탕 웃을 수 있을 때, 그 어떤 거리낌 없이 행동할 수 있을 때, 그 모든 순간이 이미 '휴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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