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 덕 / 바다 해
'덕해'는 넓은 바다처럼 살라는 뜻으로 성분 어머님의 서예 스승님께서 지어주셨다고 한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는 바다처럼 성분 어머님도 베푸는 삶을 살아오셨다. 젊은 시절, 일하며 갈고 닦은 운전 실력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공병을 모으신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어온 선행에 공병 모으기에 동참하는 마을 사람들도 늘었다. 지나가는 길에 어머님이 공병을 옮기는 모습을 보면 선뜻 나서 도와주시기도 한다고.
자상하고 동네 일이라면 나서서 도와주는 성분 어머님은 그야말로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유명 인사다. 공병을 모아 힘든 사람들을 도운 지 오래되었다는 마을 사람의 한마디가 그동안 성분 어머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본인 몸도 성치 않은데 아픈 다리를 이끌고 봉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성분 어머님에게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사랑하는 남편이 곁을 떠난 지 올해로 18년이 지났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리울 뿐이다. 매일 13개의 학교에 식자재를 납품하러 다녔던 어머님. 그런데 어느 날, 생전 감기에 잘 걸리지 않던 남편이 꽹과리 깨지는 소리로 기침을 해 병원에 가본 결과,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어머님은 딸 간호를 하느라 아픈 남편을 돌보지 못했고, 결국 남편은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직도 남편을 혼자서 보낸 것이 미안하다는 어머님. 아침 일찍 나가 치료받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왔을까 생각하기도 한다고. 무릎이 아플 때면 그렇게 남편 생각이 난다고 한다. 무릎이 아픈 것인지 마음이 아픈 것인지 어머님은 고통을 삼키며 밤을 보내신다.
남편의 손과 내 손이 닮았다며 연신 손을 잡고 계시던 어머님. 어머님과 함께 보낸 하루는 더없이 따뜻했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어머님은 손을 흔들며 끝까지 배웅해 주셨다. 지금은 무릎도 안 아프고 잘 걸어 다닌다며 병원에 오시지 않는다. 골다공증 때문에 걱정이 많았지만, 기우였다. 의사로서 환자가 병원에 안 와도 될 만큼 회복했다는 건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아들로서는 내심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어머님이 건강하시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