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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rkat Nov 09. 2019

다들 감나무 하나씩은 있잖아요?

시골 핵인싸나무 감나무와 나눔 이야기

올해만 수확해서 먹어볼까?


시골로 내려온 후, 너저분하게 정리되지 않던 공간에 있는 풀과 나무들을 좀 베어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던 때, 시골 집 뒷마당에 있는 감나무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당시 꽂아둔 대봉감나무는 제 눈치를 봤습니다. '그래, 당장 베어버리기 아까우니까 올해만 수확해서 먹자!' 기적적으로 당시 감나무는 삼촌의 기계톱을 피해갔습니다.


그렇게 살아 남은 감나무는 올 가을, 맛있는 감을 선물해주었습니다. 농약이 뭔지도 몰라서 그냥 방치한 감나무에서 이렇게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이걸 아이돈노농약(I Don't No Pesticides ) 농법이라고 부릅니다. 11월 5일, 처음으로 감을 수확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욕심 없이 가족끼리 먹을거로 생각하고 쉬엄쉬엄 땄습니다. 잘 익은 홍시는 그 자리에서 후루룩 먹었습니다. 감 두 세개를 먹고 나니 배가 부르더군요. 해가 질때까지 감을 딴 결과, 감 세 상자를 수확했습니다. 첫 농작물 수확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늦은 오후, 갑자기 삼촌 친구분께서 감을 사러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제 따놓은 감으로 부족할 것 같아서 만사를 제쳐두고 다시 따기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가족끼리 먹을거로 생각하고 쉬엄쉬엄 땄는데, 오늘은 무슨 기계처럼 미친듯이 땄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땄습니다. 팔아야 된다는 생각에 눈에 불을 켜고 감을 찾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해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역할 분담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높이 있는 감들을 노렸고, 엄마는 낮은 곳에 있는 감들을 노렸습니다.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가 무슨 뜻인지 이해됐습니다. 그렇게 감 열 상자를 더 수확했습니다. 늦은 저녁 찾아온 고객님은 감 세 상자를 가져갔습니다. 그렇게 뜻밖의 인생 첫 농작물 판매를 하게됐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나눔


잔뜩 쌓인 감들을 어쩌면 좋을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감을 환장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과 함께 외삼촌과 외할아버지댁에 감 한상자씩을 포장해 보냈습니다. 그리고 앞 집 할머니도 한 상자를 드렸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감 한상자씩을 포장해 보내고 나눠주는 엄마를 보면서 나눔이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도 저를 생각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저도 엄마를 따라 전에 다니던 직장과 친구들에게 감을 보냈습니다. 전 직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 하나씩 먹고 열심히 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친구는 얼마 전 둘째를 낳았습니다. 아내가 감을 엄청 좋아한다고 고맙다고 하더군요. 또 한 친구는 강원도에 비어 있는 할아버지 집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겠다고 합니다. '대충해~' 한 마디와 감을 나눴습니다. 어쩌면, 무언가 나눌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눈길도 안주다가 이맘때쯤 와서 호다닥- 감만 따가는 걸, 나무는 뭐라고 생각할까요('어후 무거웠는데 고마워!'라고 할까요?). 감나무는 감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수확한 감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제 저 높이 달려 있는 몇개의 감들은 까치에게 나누어줄 예정입니다. 시골은 이렇게 월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P.S. 옛말에 까치밥으로 감을 남겨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높이 달려 있는 감을 바라보면, 꼭 까치를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미처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는 감을 따지 못하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겸손한 척을 더한 말이라고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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